내 인생의 드라마 속 명장면

e s s a y 2008/07/28 18:37 posted by 곱씹다


어느 흐린 날의 한적한 바닷가. 왜소한 체격에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인 남자가 한눈에도 버거워 보이는 서핑보드를 옆에 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도무지 이 남자와 같은 세상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자체 발광’하는 여자가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결심을 한 듯 남자가 바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모래사장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뒤이어 입수를 금지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여자는 남자를 만류한다. 그때, 갑자기 남자는 여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고백을 듣던 여자는 되레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마주본 남녀를 살포시 적신다. 마치 두 사람을 다독여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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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드라마 <전차남> 중 한 장면. ⓒ 영상 화면 갈무리


일본 드라마 <전차남>의 한 장면이다. 첫 데이트에서 취미를 “넷 서핑”이라고 말한 게 잘못 전달돼 졸지에 ‘에르메스(이토 미사키 분)’에게 ‘서핑’을 보여줘야 하는 전차남(이토 아츠시 분). 하지만 하루아침에 ‘오타쿠’가 서퍼로 변신할 리 만무하고, 결국 전차남은 바닷가에서 에르메스에게 “거짓말을 했다”면서 용서를 빈다. 그리고 에르메스는 전차남에게 외려 잘못 들은 자신의 탓이라며 “상처만큼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사과를 구한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인간적인 일이다.” 고대 그리스 희극의 대사다. 실수를 정당화하는 변명처럼 들리긴 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누구나 실수를 한다. 다만, 그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어떡하면 얼렁뚱땅 실수를 덮고 넘어가기 일쑤다. 이 장면은 거짓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에르메스가 진실한 전차남에게 감동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다. 그러나 만약 전차남이 비를 기회삼아 실수를 덮어버렸다면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을지언정 에르메스의 마음을 얻을 순 없었을 터.  


이처럼 진실은 언제나 의미 있다. 나아가서 진실한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다. 내가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유이자,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한 가지 진실을 살며시 밝힌다. 나는 사실 농구를 ‘무지’ 못한다. 드리볼을 하는 족족 ‘워킹’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가 “농구 잘하는 사람이 멋있더라” 하기에 “잘한다”고 한 게다. 이 점 언젠가 꼭 고백하고 싶었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과 공유하는 법!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12일 작성.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2/26 17:57

    저도 큰일났어요. 노래 못하는데, 노래 잘한다고 했어요... ㅠㅠ 노래방 가는 날에 테이블 위에 올라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ㅡㅜ;

    • Commented by BlogIcon 곱씹다 at 2009/03/06 18:25

      ㅋㅋ 무릎을 꿇는 것보단 올라가신 김에 춤을 추시는 게 좋겠어요. 격한 춤에 노래가 묻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