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는 의외로 작품성에서는 그다지 빼어난 영화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가 주목했던 어느 정도 진지한 영화들과 달리 그저 유쾌한 오락 영화에 가깝다는 말이다. 게다가 스케일 면에서도 소박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작품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여느 때보다 대중성과 이국적 정취에서 큰 점수를 딴 덕분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두 결정적 요인은 하나의 키워드로 만나기도 하는데, '발리우드'(인도의 영화 산업)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 출신의 대니 보일 감독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카스 스와루프의 <Q&A>를 영화화하면서 공교롭게도 발리우드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따랐다. 작가 사이먼 뷰포이가 원작 소설을 각색해 발리우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절한 멜로라인과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등을 한결 부각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견 성장영화 같은 이 영화를 정작 관통하는 건 자말와 라타카(프리다 핀토)의 멜로다. 그리고 이들의 멜로라인을 도드라지게 하는 영화적 장치, 즉 사랑의 훼방꾼들도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인도 배우들을 위주로 이뤄진 캐스팅이나 발리우드 특유의 뮤지컬 같은 마지막 시퀀스, 인도의 전통 악기에 테크노를 접목한 음악 등은 이국적 정취에 한껏 매료되게 한다.(그나마 낯익은 얼굴이 영국 e4에서 2007년부터 방영됐던 드라마 <스킨스>(Skins) 시즌 1·2의 무슬림 앤워 카랄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린 데브 파텔이다) 자말의 삶에서 엿볼 수 있는 인도의 빈곤과 종교적 갈등,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로 서정적으로 그려지며 한껏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한계도 여기서 기인한다. 결핍된 단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다소 관조적이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이방인의 거리가 느껴져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안전하게 잘 만든 오락 영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돋보이는 게 탄탄한 플롯인데, 영화 후반까지 경찰의 추궁을 받는 자말의 현재 시점과 그의 해명에 따른 플래시백이 교차해 퀴즈쇼를 풀어가는 것처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고조한다. 특히 이야기가 하나의 시점으로 포개어지기 전후에 얼핏 '영심이'가 겹쳐 보이는 퀴즈쇼의 후반 라운드는 압권이다. 소신을 따르는 바람에 극적으로 행운을 잡는 데브 파텔의 모습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감칠맛 나게 응축할뿐더러 휴먼 드라마로써의 감동을 남김없이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새롭지 않은 메시지가 퀴즈쇼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는 덕택에 색다르게 전해지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거의 완전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한번쯤 기대고 싶은 동화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가 들춘 인도의 환부만은 결코 "영화 속 이야기니까"라고 덮어버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 사실주의적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애당초 이 영화의 몫이 아니었으니 가타부타할 문제는 아닐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루한 현실이 달콤한 동화를 채색하는 도구로만 쓰였을 때, 아무래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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