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08/05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
  2. 2007/07/16 춘천에서도 알 만한 사람만 안다는 '고탄리 계곡'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

d i a r y 2007/08/05 23:44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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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몇 해 전, 머릿속에 불쑥 주인 모를 번호 하나가 스쳤다. 입에 익은 번호였지만 정작 내 휴대전화엔 없는 번호였다.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짠 끝에 나는 간신히 누구를 떠올렸고, 이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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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이미지


그 번호의 주인은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열여덟 살 어느 여름날부터는. 그 번호는 내가 함께 간 계곡에서 잃은 친구 ‘땅땅’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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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우리는 모처럼 여름방학을 맞아 가까운 계곡으로 물놀이를 갔었다. 말이 물놀이지 바리바리 싸 간 건 술과 안주 따위였고, 치기 어린 술판은 일찌감치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위 위에서 안주는 먹는 둥 마는 둥 마신 술에 하나둘 거나하게 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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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진성


의미 없는 대화가 사뭇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별안간 바위 아래서 풍덩하는 소리가 들렸다. 땅땅이 미끄러져 물에 빠진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나와 친구는 연이어 물속으로 몸을 던졌지만, 허우적거리긴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죽음의 문턱으로 다다르는 듯했던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청년들이 뛰어들어 우리를 뭍으로 건져냈다. 하지만 이미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췄던 땅땅은 다시 숨을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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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

 
어느덧 7년여가 흘러  녀석을 배웅한 그곳도 춘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소가 됐다. 나 또한 샛노란 염색머리의 고등학생에서 벌써 머리숱에 고민하는 취업준비생으로 변했다.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처럼 ‘죽은 자만이 언제나 열여덟’이다. 


ⓒ 이덕원

 
누군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했다. 다른 이는 가슴 속 한구석에 묻어 두고 살아 가는 거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제 와 확실해진 건 시간도 고통을 줄여줄 뿐 상처를 아물게 하진 못한다는 것이다.


[관련 글] 지음의 부재, 그 '외로움'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21일 작성. 

춘천에서도 알 만한 사람만 안다는 '고탄리 계곡'

s k e t c h 2007/07/16 12:05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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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유난히도 늦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 이덕원


올해는 유난히도 늦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장마가 휩쓸고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엔 불볕더위가 몰려왔군요. 때문에 미쳐 피서를 떠날 계획도 준비도 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이미 온풍기가 돼버린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워야 하지요.

그리고 그나마 큰 맘 먹고 집 밖을 나서 은행, 도서관, 만화방 등 그나마 공짜 또는 저비용으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으로 향하지만, 이 또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눈치 또한 보이니 녹록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올해만큼 미리 피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 적도 없는 것 같네요.


그러던 차, 며칠 전 부모님에게 들은 희소식이 근처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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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놀이에 가장 신이 나는 건 아무래도 어린아이들이겠지요. ⓒ 이덕원


예전 같으면 부모님을 따라 나서봤자 아버지 친구 가족 중 꼬맹이들을 돌보다가 올 때 거하게 취하신 어른들 대신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피하고 피했겠지만 올해는 어쩌면 그리도 반갑게 들리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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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깨끗해 입수를 준비 중인 아이들의 모습이 수면에 비치네요. ⓒ 이덕원


제가 다녀온 곳은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에 있는 계곡이었습니다. 사실 저를 비롯해 춘천에 사는 사람들에게 여름 물놀이를 떠날만한 계곡 하면 지암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 좋은 자리 잡기도 어려울뿐더러, 매년 가다 보니 더는 새롭지 않았지요.

반면, 이번에 다녀온 고탄리 계곡은 아직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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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둑이 형성돼 있어 가운데 구멍 난 부분만 돌을 쌓아 물을 모았네요. ⓒ 이덕원


결국, 예상대로 저는 올해도 변함없이 꼬맹이들을 돌보고 거하게 취하신 어른들 대신 운전기사노릇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물놀이를 하고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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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어머님들의 빨래터가 생각나더군요. ⓒ 이덕원


바닷가로 떠나기엔 경비가 엄두 나지 않고 사람에 치이기 싫은 이들이 편히 찾을 수 있는 곳이 계곡입니다. 바다도 좋고 산도 좋지만 진정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기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곳도 계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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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니 더위가 절로 가십니다. ⓒ 이덕원


취사가 금지된 곳에서 무단취사를 하고 가져온 음식들을 먹고 곳곳에 버리고 가는 비양심적인 행동만 없다면 계곡만큼 이 여름의 무더위를 달래기에 적격인 곳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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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풍기, 에어컨이 있음에도 정작 자연이 주는 더위는 자연 속에서 달래야 제격이지요. ⓒ 이덕원


부디 깨끗하게 찾아 바르게 머물러 올해 찾은 곳이 내년, 내후년에도 변함없이 남기를 바랍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 위치 :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고탄썰매장에서 차로 5분 거리


2006년 8월16일 작성. 


<야후미디어> 'e세상기자 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