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01/29 <지붕킥>의 정음 씨에게 부치는 <1Q84> 추천 글
  2. 2008/07/28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2)

<지붕킥>의 정음 씨에게 부치는 <1Q84> 추천 글

분류없음 2010/01/29 17:07 posted by 곱씹다
이 달 초 방송을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몰라 곤혹을 치르더군요. 취업 준비 하랴 과외 하랴, 정신없죠? 에쿠니 가오리나 오쿠다 히데오가 더 익숙한 세대기도 할 테고요. 하긴 <상실의 시대>로 일찌감치국내에서 팬덤을 형성한 하루키지만, 21세기에 여전히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얼마간 ‘길티 플레져’였는지도 몰라요. 일부 악의적 비판을 걷어 낸다손 쳐도, 주력하는 장편에서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반면 어느덧 생활인으로서 현실의 쳇바퀴에 오른 독자에게 하루키의 소설 속 심드렁한 주인공의 삶은, 출근 전쟁을 치르는 만원 버스에서 듣는 “눈이 참 예쁘게 오네요”라는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었고요. 물론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해변의 카프카>를 기점으로 좀 더 깊고 너른 세계로 나아가려고 했었죠. 여러모로 설익은 탓에 되레 한계만 드러냈지만요. 

그런데도 하루키의 <1Q84>를 권하는 건, 그것도 다 이 책을 내놓기 전까지의 소리기 때문이에요. <1Q84>에서 하루키는 문학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본의 사회 병리를 두루 건드리는가 하면, 치밀한 구성과 도저한 서사성으로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하거든요. 

의미심장한 건 그러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능란하게 밀어붙인다는 거고요. 요컨대 특유의 메타포와 더불어 댄디즘이에요. 교향곡과 재즈, 소설, 여행기가 예의 오마주처럼 등장하고 옷차림과 요리, 심지어 성애까지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걸 잊지 않는 거죠.

<1Q84>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이자 두 사람이 ‘1Q84’라는 의문의 세계에 들어선 뒤 겪는 판타지예요.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는 킬러 아오마메의 이야기와 한 소녀를 만나면서 그로테스크한 사건에 휘말리는 소설가 지망생 덴고의 이야기가 장을 번갈아 나오는 식이고요. 

결국 하루키는 현실과 판타지, 체제와 반체제가 기실 뒤틀려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말하는 듯해요. 그럼 아오마메와 덴고는 그 이음매를 찾아 합일될 수 있을까요? 지훈 씨랑 함께 올 여름 출간될 3권의 답을 기다리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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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e s s a y 2008/07/28 18:26 posted by 곱씹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해 겨울, 나는 신문사 인턴을 하느라 상경해 종로의 한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턴 초기 별로 맡겨지는 일이 없어 늘 칼퇴근이었지만, 퇴근을 해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대부분의 친구가 군복무 중이었던 시기에, 더군다나 서울은 철저한 타향이었던 까닭이다.


역시 마지못해 고시원 골방으로 직행하던 어느 날, 요기 거리를 찾아 들른 편의점에서 나의 ‘길티 플레져(대놓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악취미)’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선뜻 두 병의 소주를 손에 쥐고 만 것. 물론 그 순간 다른 손에 든 요기 거리는 이미 ‘안주 거리’가 돼버렸다.


그렇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집에서 홀로 마시는 술’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로지 ‘소주’다. 이것이 길티인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나 와인 따위로 가볍게 목을 적시는 정도였다면 애초 길티가 아니었을 테니.



그렇게 마시는 술은 여느 사람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나 보다. “웬 청승이냐”며 처량하게 보거나 ‘알코올중독’이 아닌지 걱정하는 눈이다. 이를테면 기껏 닭갈비와 소주를 사다 한상 차리고 배경음악까지 선곡해 첫잔을 비울라치면, 때마침 전화를 한 친구 녀석이 “왜 혼자 술을 마시느냐”며 한사코 ‘함께 마셔 주겠다’는 식이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들입다 그런 일를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에 한해서다. 더욱이 친구의 조언보다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대한 순간이다. 한마디로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쯤 되겠다.


실제로 골방에서 길티뿐만 아니라 ‘빈티’마저 내며 핫도그에 소주를 곁들였던 그해 겨울도 인턴기자로서의 부족한 능력을 절감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는 진정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게 했고 비로소 막잔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답을 내놨다.

김훈은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서 “술은 먼 것을 가깝게 당겨준다”고 했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술의 이런 속성을 빌려 의식(意識)으로 낙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비관해 보고, 반대로 의식으로 비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낙관해 보는 시간인 셈이다.

인생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길티 플레져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잠시 멈춰서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헤아리는 숭고한 ‘의식(儀式)’인 셈이다. 그래서 이런 의식은 나의 ‘플레져’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11일 작성.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1/13 21:08

    혼자 마시는 술은 너무 빨리 취해요. >,.<

    • Commented by BlogIcon 곱씹다 at 2009/01/14 03:15

      정답!ㅋㅋ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길티'인 이유 중 하나랍니다. 은재님은 참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