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07/28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2)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e s s a y 2008/07/28 18:26 posted by 곱씹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그해 겨울, 나는 신문사 인턴을 하느라 상경해 종로의 한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인턴 초기 별로 맡겨지는 일이 없어 늘 칼퇴근이었지만, 퇴근을 해도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가뜩이나 대부분의 친구가 군복무 중이었던 시기에, 더군다나 서울은 철저한 타향이었던 까닭이다.


역시 마지못해 고시원 골방으로 직행하던 어느 날, 요기 거리를 찾아 들른 편의점에서 나의 ‘길티 플레져(대놓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악취미)’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자 선뜻 두 병의 소주를 손에 쥐고 만 것. 물론 그 순간 다른 손에 든 요기 거리는 이미 ‘안주 거리’가 돼버렸다.


그렇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집에서 홀로 마시는 술’이다. 정확히 말하면, 오로지 ‘소주’다. 이것이 길티인 이유이기도 하다. 맥주나 와인 따위로 가볍게 목을 적시는 정도였다면 애초 길티가 아니었을 테니.



그렇게 마시는 술은 여느 사람들의 눈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이나 보다. “웬 청승이냐”며 처량하게 보거나 ‘알코올중독’이 아닌지 걱정하는 눈이다. 이를테면 기껏 닭갈비와 소주를 사다 한상 차리고 배경음악까지 선곡해 첫잔을 비울라치면, 때마침 전화를 한 친구 녀석이 “왜 혼자 술을 마시느냐”며 한사코 ‘함께 마셔 주겠다’는 식이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들입다 그런 일를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는 경우는 ‘깊은 고민에 빠져있을 때’에 한해서다. 더욱이 친구의 조언보다는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중대한 순간이다. 한마디로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쯤 되겠다.


실제로 골방에서 길티뿐만 아니라 ‘빈티’마저 내며 핫도그에 소주를 곁들였던 그해 겨울도 인턴기자로서의 부족한 능력을 절감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날의 술자리는 진정 ‘나는 누구인가’를 성찰하게 했고 비로소 막잔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답을 내놨다.

김훈은 장편소설 <칼의 노래>에서 “술은 먼 것을 가깝게 당겨준다”고 했다. 나의 길티 플레져는 술의 이런 속성을 빌려 의식(意識)으로 낙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비관해 보고, 반대로 의식으로 비관할 때 무의식을 당겨 낙관해 보는 시간인 셈이다.

인생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길티 플레져는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잠시 멈춰서 지나온 길과 나아갈 길을 헤아리는 숭고한 ‘의식(儀式)’인 셈이다. 그래서 이런 의식은 나의 ‘플레져’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11일 작성.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1/13 21:08

    혼자 마시는 술은 너무 빨리 취해요. >,.<

    • Commented by BlogIcon 곱씹다 at 2009/01/14 03:15

      정답!ㅋㅋ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요~ '길티'인 이유 중 하나랍니다. 은재님은 참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