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11/11 죽음도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1)
  2. 2008/09/02 돈과 사랑, 그 '달콤'한 욕망의 다른 빛깔
  3. 2007/07/17 '중국집'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
  4. 2007/07/15 가장 좋은 치료는 '사랑'을 주는 것

죽음도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r e v i e w 2008/11/11 23:54 posted by 곱씹다

다키타 요지로의 <굿’바이>는 ‘일본영화다운 일본영화’다. 혹 일본영화가 “나다운 게 뭔데?!”라는 클리셰로 묻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죽음’에 대한 반추와 ‘장인(匠人)’에 대한 경배, 그리고 ‘일상’에 대한 묘사. 적어도 드라마 장르에선 일본영화가 가장 잘 다루는 것들이다. 물론 이는 일본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기인한 특유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요컨대, 이 영화엔 이런 매력들이 온전히 들어있다. 장인을 소재로 설정하면서도 교묘하게 죽음을 주제로 내세우고 일상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독보적인 장점들을 집대성한 영화인 셈.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2009년 미국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부문의 일본 출품작이다.


도쿄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오케스트라의 갑작스런 해체로 실업자 신세가 되자,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 야마가타로 돌아간다. 어머니가 물려준 집에 정착해 새로운 일을 찾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고수익 보장’, ‘초보 환영’이라는 구인광고. 그런데 이게 웬걸. 여행사인 줄로만 알고 간 그곳은 ‘영원한’ 여행의 안내자를 모집하는 납관회사다. 기겁하는 그에게 사장 이쿠에이(야마자키 쓰토무)가 고액의 월급을 제안하고 그는 하릴없이 일을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초기 호된 일에 갈등도 하는 그지만, 베테랑 납관사 이쿠에이가 망자를 대하는 모습에 감화되면서 시나브로 납관사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겐 생소한 납관사는 일본에서 장의사가 장례를 치르기 전에 염습과 납관만을 전담하는 틈새 직업. <굿’바이>가 죽음과 장인, 그리고 일상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이유도 이 독특한 소재 덕분이다. 납관사의 일상을 세세히 관찰해 죽음에 관한 주제를 이끌어 내는 식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건 납관사라는 직업 그 자체인데, 이때 드러나는 게 바로 장인 정신이다. 실제로 이쿠에이와 변화한 다이고가 망자를 대하는 경건한 태도나 그들에 의해 한결 평온해져 떠나는 망자들의 모습에선 비장미를 넘어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나아가서 <굿’바이>는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배치해 극적 긴장감과 더불어 장인 정신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이를테면, 처음엔 상주와 친구의 멸시는 물론이거니와 이해심 많은 미카마저 납관사가 된 남편의 손이 “불결하다”며 뿌리치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멸시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건 죽음에 대한 불편함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 즉 살아있는 자신에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불확실한 존재라고 여기고 막연한 두려움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이고가 납관사로서 마주하는 숱한 죽음을 통해 “죽음만큼 일반적인 게 어디 있냐”며 “언젠간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주지시킨다. 실제로 납관사에 대한 사람들의 멸시도 죽음의 오롯한 실존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이르러 되레 감사와 존경으로 전복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굿’바이>에서 나오는 다이고의 고향 혹은 소도시로의 회귀와 재래식 대중목욕탕의 존폐 위기는, 전자가 최근 일본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라면 후자는 과거 장인을 다룬 일본영화에서 익히 봐온 관습이다. 모두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 에 잇닿는 대목으로 이 영화의 주제와도 정서적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이처럼 얽히고설킨 일본영화의 특징들은 소소한 일상의 결을 벗겨내는 화법에 의해 잘 맞물린다. 물론 이 영화가 시종일관 묵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 영화 초반 엉뚱한 상황에서 나오는 유머가 자칫 너무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외려 아쉬운 건 전형적인 3막 구조에서 아버지와의 매개물이나 균일하게 할당된 조연들의 사연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굿’바이>가 건네는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던진 말과 맥을 같이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럼 삶의 일부인 죽음 또한 응당 맞이할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와 폭주족 등의 죽음에서 살아생전엔 미처 이루지 못한 가족 간의 화해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무게를 강조한다. 납관사가 돼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한 다이고가 미카를 뜨겁게 안는 모습처럼, 우리네 삶도 뜨겁게 안으라는 조언이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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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BlogIcon 남다른 몽상가 at 2008/11/22 00:50

    다섯 번째 문단, 끝내지 못한 숙제.

돈과 사랑, 그 '달콤'한 욕망의 다른 빛깔

r e v i e w 2008/09/02 20:43 posted by 곱씹다

고층 빌딩 위에서 굽어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어둑한 거리의 한 지점에 살며시 닿는다. 뒤이어 다가간 그곳에서는 자살한 한 남자의 흔적이 ‘깨끗이’ 씻기고 있다. MBC 드라마 <달콤한 인생>은 첫 회부터 주인공 준수(이동욱)의 추락사를 밝히면서 시작한다. 자연스레 나머지 내용은 6개월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살하기까지 그의 삶이다. “세상에 정말 사랑 같은 게 있는 걸까? 목숨을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순수한 사랑.” 요컨대 그에게 그 기간은 자신이 던졌던 물음에 대한 답을 체득한, ‘유일’한 시간이었다.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빛내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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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은 공통적으로 ‘달콤’한 욕망의 대상인 돈과 사랑의 전혀 다른 빛깔을 다룬다. 물론 이는 멜로드라마에서 한 몸처럼 자주 쓰이는 소재다. 욕망의 갈림길 앞에 선 인물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관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멜로드라마에서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현실론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더냐”는 이상론의 갈등은 불가피할 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익숙한 소재를 다루되, 낯선 방식을 택한다. 통속적인 양자택일 구도를 전면에 설정하기보다는, 돈에서 비롯된 ‘미스터리’를 장애물로 세워 사랑의 가치를 빛내는 식이다. 그래서 미스터리를 제외하면 언뜻 르네 끌레망의 <태양은 가득히>가 비치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돈보다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미스터리는 친구 성구(정겨운)의 ‘추락사’와 준수의 연관성 여부다. 준수는 성구의 온갖 멸시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뒤치다꺼리를 하며 기생하던 존재. 그가 수상한 건 함께 간 오타루의 설산에서 성구가 죽었는데도, 사실을 숨긴 채 친구의 부를 대신 누린다는 점이다. 덕분에 표면적으로는 성구가 된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시나브로 조여 오는 죄책감에 성구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그는 성구의 시체를 찾으러 다시 북해도로 향하고 여기서 우연히 ‘멜로’가 시작된다. 심지어 상대는 친구 다애와 불륜 관계인 동원(정보석)의 아내 혜진(오연수).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으로 여기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다. 그는 처음으로 간절히 살고 싶어지지만, 자신을 의심하는 성구의 아버지 강 회장(조경환)으로 인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 ‘깨끗’해지기 위한 선택 

 

그렇다한들, 종국에 준수는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아닌 게 아니라 사실만 놓고 봤을 때 그는 충분히 살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마땅한 증거도 없었을뿐더러, 성구의 추락사를 조사한 퇴직 형사 박병식(백일섭)도 결과적으로는 되레 그의 결백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범죄 여부를 떠나 혜진과 도피를 시도하거나, 하물며 죽였더라도 자수해서 광명을 찾는 방법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준수는 기어이 자살을 택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극중 가장 흥미로운 관계인 준수와 다애 사이에서 찾을 수 있다. 명품으로 남에게 뽐내는 낙에 사는 다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동원의 돈에 길들여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물. 이런 다애에 대한 준수의 마음은 악어새가 악어새를 보는 연민이다. 무의미한 욕망의 덫에 걸려 정작 유의미한 욕망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준수는, 다애에게 자신처럼 되기 전에 다시 시작하라고 충고한다. 이에 “사람도 빨래처럼 깨끗이 빨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애의 푸념은 그의 것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준수의 범죄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실 밖의 진실은 준수가 열등감에 성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과적으로 성구의 손을 놓았다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준수가 돈이라는 무의미한 욕망으로 상징되는 성구, 즉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생의 소멸’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전반적으로 인물들을 관조하는 듯했던 카메라는 준수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첫 회의 첫 숏이었던 ‘부감숏’이 드라마 후반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준수 또한 고층 빌딩의 초고층 오피스텔 아래로 화분과 휴대전화를 던지고, 급기야는 몸까지 던지고 만다. 여기서 부감숏은 돈으로 쌓아올린 욕망의 탑 위에서 불안하게 서 있는 준수에 대한 메타포일 터이다. 마침내 준수는 제자리로 돌아감으로써, 또 마찬가지로 하강하는 빗줄기와 물줄기를 씻김으로써 비로소 깨끗해지는 것이다. 
 

문학적 드라마의 참신함, 플래시백의 과용


한 편의 소설을 보는 것 같았던 문학적 드라마 <달콤한 인생>의 시도는 일정 부분 유효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더라도 마니아층을 뚜렷하게 형성한 덕분이다. 이는 도저한 서사성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함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문어체 대사와 내레이션 그리고 의식의 흐름 같은 문학적 특징은 드라마와의 간극을 보인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미스터리 플롯이라곤 해도 시점은 지나치게 혼란스러웠다.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다시 인물들의 플래시백이 번갈아 뒤섞이는 탓이다. 인물의 시점에 따르는 덕에 감정을 충실히 뽑아내는 건 분명하지만, 많은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왜 자꾸 선을 그으려고 하세요. 여기서 여기까지는 여기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있었던 일은 그저 과거의 한 지점이고, 뭐 그런 식으로 선을 그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지금 감정에 충실하면 안돼요?” 그래서 혜진에게 던진 준수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소박한 바람처럼 들린다.


<달콤한 인생>을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던 건, 우리가 살아가는 드라마 밖 세상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준수의 대사대로 “온 세상이 싸구려 욕망으로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준수의 물음에 답하는 다애의 대사를 빌려 희망의 손짓을 한다. “그런 걸 왜 세상에서 구해? 그런 건 네 마음속에 있는 거라고.”


이덕원

'중국집'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

e s s a y 2007/07/17 23:16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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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볶아 따끈따끈한 자장. ⓒ 이덕원


3주 전, 부모님이 ‘중국집’을 새로 개업하셨다. 부모님은 추석연휴, 하루도 쉬지 않고 준비하시더니 드디어 가게 문을 연 것이다.

우리 가게는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 두 분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중국집이다.

영업을 시작하고 일주일 여가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가게회식을 하고 있으니 운전기사 노릇 할 겸 와”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가게로 갔다.

가게에 달린 작은 방에서 하는 조촐한 회식이었지만, 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고 있었다. 가게 삼촌들에게 개업 전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맛있는' 아버지의 음식, 그런데 '오래' 걸린다

개업 초창기다 보니, 회식자리에선 자연스레 가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배달을 하는 한 삼촌은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에 대해 손님들이 한결같이 “맛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내 옆에 앉은 삼촌도 “내가 15년 동안 중국음식점에서 일했는데 아버지만큼 음식을 맛있게 하시는 분도 없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아버지의 음식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드신 자장면, 짬뽕이 가장 맛있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먹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인사치레라 감안해 들어도 삼촌들의 말씀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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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 이덕원


다만, 그 삼촌은 “한 가지 흠이라면 아버지가 손이 조금 느리시다”며 “그래서 배달이 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촌은 “하지만 그 역시 한 그릇을 만드시더라도 정성을 쏟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촌의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여쭸다.

“엄마, 아빠가 원래 느리셨나?”

“빠르진 않았지.”

“그럼 느려지신 거지? 아무래도 오래 쉬셔서 그런가 봐, 그렇지?”

“글쎄, 아빠가 해내질 못해.”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전'


사실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부모님은 이전에도 중국집을 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중국집에서 일하신 것을 제외하고 가게를 차려 직접 운영하신 것만 7년이다. 그때도 역시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과 형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가게였다.

부모님이 가게를 차리시고 3, 4년이 지났을 즈음,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여름 방학을 맞아 가게에서 두 달여간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하는 일이래 봤자 전화 받고, 서빙하고, 청소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여름에 냉방기 없는 중국집 내부는 찜통처럼 더워 녹록지 않았다.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나는 점심때가 지나가고 전쟁터가 된 테이블을 치우다 선풍기 앞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두세 시간을 주방에서 요리만 하신 아버지가 뒷문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누구보다 이 더위에 일하시는 아버지가 걱정돼 따라갔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고 있던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차 따라 버리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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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샌 프라이팬을 드는 것도 힘에 부쳐 보이시는 아버지(참고로 아버지는 가수 'DOC'가 부른 'DOC와 춤을'의 노랫말처럼 당당히 '박박 밀은 멋쟁이'시다). ⓒ 이덕원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 한여름, 아버지는 매년 그렇게 뜨거운 불 앞에서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찰 정도로 무더위와 맞서고 있으셨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나마 여름이 낫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가게를 하던 곳이 시골이었던지라 문을 닫기도 전에 버스가 끊기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차가 없었던 부모님은 한겨울이면 매일 한 시간 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겨울바람을 뚫고 출퇴근하시곤 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그렇게 7년을 온전히 일하셨고, 고된 몸만큼 건강도 나빠지시고 말았다. 결국, 아버지는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병원을 드나드셔야 했고, 가게도 그만둬야 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부모님은 병원에 다니며 휴식을 취하셨고, 덕분에 건강도 많이 회복하셨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건강도 좋아졌으니 다시 가게를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곧 졸업해서 취직을 할 테니 쉬시라”고 만류했지만, 한사코 “쉬엄쉬엄할 거니까 걱정하지마라”고 하시는 부모님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가게 자리를 고르셨고, 아버지는 직원을 구하셨고, 나는 가게 상호를 지어 지금의 가게를 새로 차린 것이다.

자신의 일에 진정 ‘보람’을 느끼시는 아버지


회식 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신 ‘진짜 이유’는 자신보다 아들이 삼촌들과 세대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 대화도 나누며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의 의도대로 옆에 앉은 삼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식 막바지, 한 삼촌은 음식 칭찬에 뒤이어 “농담이 아니라 진로를 정하지 않았으면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수받아 뒤를 잇는 것을 생각해봐”라며 “중국집은 주인이 주방장을 해야 돈을 버는데 네 나이에 아버지가 하시는 요리를 전수받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뒤늦게 안 것이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이어받기를 바라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들이 공부하기에는 글렀다고 보신 건가’ 하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서운했다. 하지만 이후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난 내가 하는 일이 좋아, 그래서 대학 가서 흐지부지할 거라면 이어받는 게 낫다는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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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자장을 볶으시는 모습. ⓒ 이덕원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짓는 아버지의 표정이야말로 진정 행복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비록 이제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졌지만,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음식을 만드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와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이 '최고'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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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16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가장 좋은 치료는 '사랑'을 주는 것

e s s a y 2007/07/15 01:45 posted by 곱씹다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어내길… 



오늘 병원에서 진료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그런데 유난히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와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서로 꼭 잡은 손과 애교 섞인 대화는 다정한 모녀지간이라고 보기에도 각별했다. 그러던 차 다소 엉뚱한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나 배고파.”

“어머니 좀 전에 빵이랑 과자 잡쉈잖아.”


“안 먹었어. 그냥 다 버렸어.” 

“아니야. 아까 잔뜩 잡쉈어.”


순간 내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노인성 치매였다. 할머니가 노인성 치매를 앓으시는 듯싶었다. 노인성 치매란 노화에 따른 뇌의 퇴행성 변화의 결과 나타나는 노년성 정신장애.


할머니는 쉴 새 없이 묻고 또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런 할머니에게 애교 섞인 말투로 부지런히 대꾸했다. 더욱이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살며시 꼬집으며 장난을 걸었고 할머니도 이에 응수했다.


나를 비롯해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틈에서 한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머니세요, 시어머니세요?”

“시어머니세요.”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로 일흔아홉이세요.”


갑자기 옆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대화를 듣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할머니, 저는 한참 어려요.”


“몇 살인데?”
“세 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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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그래? 그럼 내가 업어줘야겠네.”
“아유. 무거워서 못 업으세요.”

“아니, 아긴데 못 업긴 왜 못 업어.”


할머니의 말에 다시 한 번 주위가 밝아졌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한마디 말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가장 좋은 치료가 사랑이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을 나오며 얼마 전 본 영화 <노트북>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노인성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옛 추억을 말해주며 사랑으로 치료하고자 노력하는 남자주인공의 모습은 방금 전 병원에서 내가 본 아주머니의 모습과 같았다.


사실상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법이 없다는 노인성치매. 그런 병이 나으려면 모 의약품 광고 내용처럼 기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부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기원해 본다. 


노인성 치매만큼 환자의 가족들을 슬프게 하는 병도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릴 적 노인성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프더군요.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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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23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