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06/26 두발 자유를 위한 '바가지 머리' 소년들의 연대
  2. 2007/09/13 애틋한 그 시절만큼 그리운 드라마 <사춘기> (4)
  3. 2007/08/29 '공포의 삽겹살'에게 첫사랑이 왔을 때
  4. 2007/07/14 “아직도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두발 자유를 위한 '바가지 머리' 소년들의 연대

r e v i e w 2009/06/26 16:16 posted by 곱씹다
어느 시골 마을, 모든 소년의 머리 모양이 하나같이 시커먼 바가지 엎어놓은 듯하다. 바야흐로 뱅 스타일의 대유행인가 싶겠지만, 웬걸 전통의 충실한 계승이다. 덕분에 귀엽긴 하지만 당최 개성이 없어 그놈이 그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상한 마을의 사내아이들은 으레 유일한 이발관인 ‘요시노 이발관’에 머리를 내맡긴다. 머리 모양도 ‘생산지’의 이름을 따 ‘요시노 스타일’. 이 완전독점 이발관의 가위를 쥔 스타일리스트 요시노 아줌마(모타이 마사코)는 한술 더 뜬다. 학교 당국에 협력해 두발 검사를 할 정도로 전통 수호에 열성적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감히 모두가 순종하는 이 율법을 거부하는 당찬 소년이 등장한다. 도쿄 물 좀 먹었다는 전학생이 잔뜩 힘줘 올린 염색 머리를 고수하려드는 것. 급기야 사태를 관망하던 요시노 아줌마의 아들과 그의 친구들까지 분연히 ‘두발 자유’를 부르짖고 조용했던 마을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요시노 이발관>은 일차적으로 요시노 스타일만큼이나 귀여운 성장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의 귀여움은 기본적으로 소년들의 머리 모양으로 뱅 스타일을 차용한 덕분이다. 뱅 스타일이 어디 웬만해서 소화할 수 있는 것이던가. 아닌 게 아니라, 극소수의 선택된 미소년이 아니고서야 조건반사로 추억의 ‘호섭이’부터 소환시키기 십상인 머리 모양. 범아들에겐 귀엽기는 쉬울지언정 멋있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니 당사자인 아이들에겐 더욱 심각하고 제삼자인 관객에겐 마냥 귀여울 수밖에 없다. 가령 소년들의 머리가 모히칸 스타일이라든가 깍두기 스타일이었다면 아무래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런가 하면 시나브로 사춘기를 맞은 소년들의 모습은 성장영화 특유의 재미를 이끌어 낸다. 이성에게서 2차 성징의 흔적을 찾는 데 골몰하고 다시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아등바등하지만, 알다시피 저마다 얼굴형과 취향이 제각각임에도 아이들의 머리 모양은 정작 요시노 스타일로 통일돼야 한다. 실 어른들이 소년들에게 이 머리 모양을 강요하는 건, ‘뒷산의 괴물이 사내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전설을 막고자 생긴 전통 때문이다. 물론 21세기에 그런 전설은 이미 어른들에게도 믿거나 말거나. 그저 어른이건 아이건 대대로 그래 왔으니 지금도 지켜야 한다는 ‘수구’일 뿐이다. 그러나 당연하게 여기던 소년들이 전학생에게 감화되는 순간, 빈약한 논리의 벽은 비로소 개혁의 당위 앞에 뿌리째 흔들리고 만다. 그 후 아이들이 존중받지 못했던 개성을 좇아 벌이는 소동극은 사춘기의 에피소드와 맞물려 제법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굳이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 낸 뒤 여러 설정을 덧씌운 건 개성 있는 인권영화로서의 의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두발 규제는 산신이라는 절대적 토속신앙에 기인하고, 이를 단속하는 건 마을의 교육기관인 학교 측과 이해관계인인 요시노 아줌마며, 심지어는 마을 방송을 통해 전통을 선전하는 사람도 이 아줌마다.


특히 마을로 울려 퍼지는 그의 방송은 자못 의미심장한데, 이 영화 밖의 어느 나라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과 싱크로율 100%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영화는 여러모로 하 수상한 시절과 묘하게 맞닿아 공교로운 시기성을 만들어 낸다. 마이클 무어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논픽션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점점 픽션처럼 돼가고 있”는 셈이다.    


<요시노 이발관>은 <카모메 식당>으로 유명한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장편 데뷔작이다. 지금까지 총 세 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않은 그가 최근 <안경>까지 두 편의  영화로 뚜렷한 마니아층을 형성하자 뒤늦은 개봉이 이뤄진 것이다.


앞서 개봉한 두 편의 영화가 독특한 캐릭터들을 통해 ‘슬로우 라이프’라는 메시지를 싱그럽게 설파하고 그들의 관계에서 인간미를 강조해 잔잔한 감동을 줬다면, 이 영화는 사춘기 시절을 추억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머리 모양과 집단 종교의식은 각각 <안경>에서의 안경과 집단 체조를 연상시킬뿐더러, 특정 공간에서 나름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일관된 스타일이다. 녹록지 않은 어른의 삶을 상징하는 그 외의 요시노 가족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하는 건 다소 아쉽지만, 성장영화로 보든 인권영화로 보든 ‘잘 자란 나무의 옛 떡잎’답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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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한 그 시절만큼 그리운 드라마 <사춘기>

c o l u m n 2007/09/13 19:32 posted by 곱씹다

MBC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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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청소년 성장드라마 <사춘기>의 동민과 친구들. ⓒ MBC 프로덕션


'사춘기'. "육체적·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를 말한다. 갑작스런 변화에 심리적 혼란이 뒤따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도 부른다. 1990년대 중반,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이 사춘기를 오롯이 담은 드라마가 있었다. 바로 MBC 청소년 성장드라마 '<사춘기>'다.

한국판 <케빈은 열두 살>

<사춘기>는 요새 표현대로라면 '시즌'이 있었던 드라마다. 1993년 4월부터 95년 2월까지 1기 '동민(정준 분)의 사춘기'가 방영된 데 이어 95년 3월부터 96년 8월까지 2기 '재경(서재경 분)의 사춘기'가 방영됐다. 동민이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재경이라는 중학생의 사춘기로 이야기가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속설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단연 '동민의 <사춘기>(이하 사춘기)'다. 이런 까닭에 '동민'의 <사춘기>를 돌아본다.


<사춘기>는 제목 그대로 사춘기를 맞은 중학생 동민의 이야기. 한국판 <케빈은 열두 살>이라고 볼 수 있다. 주로 자아, 친구관계, 짝사랑, 가족 등과 얽힌 동민의 고민으로 이뤄졌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경험할 법한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헤쳐나가는 동민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낸 것이다. 더욱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민의 독백은 사춘기 소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전달해 한결 큰 공감을 얻었다. 한 편 한 편이 곧 동민의 일기였던 셈이다.

이런 사춘기는 '청소년' 성장드라마였음에도 당시 고른 연령대의 사랑을 받았다. 청소년들이 사춘기를 보며 고민을 나눴다면, 성인들은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준이 아닌 동민의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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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의 '육체미 소동 편' 중 한 장면. ⓒ 영상화면 갈무리


동민 역은 실제 중학생이었던 정준(현재 29살)이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엉뚱한 정준의 연기는 옆집에 사는 중학생 동민이 튀어나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와 닿았고, 그만큼 동민은 많은 이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물론 최근 나온 성장드라마 <반올림>의 '옥림이(고아라 분)'나 <최강! 울엄마>의 '최강(진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한 정준의 외모도 친숙함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

사실 이 때문에 정준은 <사춘기>의 동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사춘기> 종영 후 출연한 여러 편의 드라마·영화가 인기를 얻었음에도, 정작 정준의 포털사이트 연관검색어는 아직도 '사춘기'라는 얘기다. 너무나도 사춘기 소년 동민 같았기에 받은 훈장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 외에 '서원'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인 박성희가 동민의 애틋한 첫사랑 성희 역으로 나왔고, 한때 그룹 야다의 멤버로 활동한 장덕수를 비롯해 이정호, 조명식, 박소정 박인선 등이 동민의 친구로 분했다. 또 체육선생님 역으로 김상중이 출연했던 것도 지금 보면 새롭다.

춘천을 알린 최초의 드라마


<사춘기>의 또 다른 매력은 서울이 아닌 강원도 '춘천'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처럼, 춘천에 대한 사람들의 낭만과 사춘기 중학생의 순수함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춘기>는 이야기 곳곳에 춘천의 경치를 담아 그 강점을 제대로 살렸다. 그래서 '<사춘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자전거를 탄 채 호수를 끼고 달리는 동민과 친구들의 모습이다.

특히 동민과 친구들이 다니던 아름다운 학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탁 트인 전경, 나무가 우거진 교정, 넓은 운동장과 잔디밭은 작은 대학캠퍼스를 연상시켰다. 강원사대부중으로 나왔던 이 학교는 실은 중학교가 아닌 고등학교로 춘천 후평3동에 위치한 강원사대부고다.


이처럼 드라마에 대한 동경이 춘천, 그중에서도 강원사대부고로 옮아가 <사춘기>를 추억하고자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사춘기>야말로 <겨울연가>보다 앞서 춘천을 알린 최초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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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의 무대가 된 강원사대부고. ⓒ 이덕원


대본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S# 1 학교 강당

신체검사 날이다. 여기저기 신체검사 하는 모습이 죽 보인다. 키를 재는 아이, 몸무게를 재는 아이……. 담임선생님이 저울 눈금을 읽으면 부반장인 지연은 옆에서 기록을 한다. 저울 앞에 줄 서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여학생들은 울상이 되어 동동거리고 있다. 뚱뚱한 수진, 바들바들 떨며 저울 위에 한쪽 발만 살짝 올려놓는다.


담임선생님이 수진에게 똑바로 서라고 말하자, 수진은 마지못해 바로 올라서며 조마조마해한다. 담임선생님, 눈금을 보며 "25!"하고 외치자, 아이들 모두 놀라는데, 다시 담임선생님이 "곱하기 2"를 덧붙인다. 수진, 창피해하며 들어가고 아이들 웃는다. (후략)


<사춘기>는 드라마 대본으로써는 처음으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1993년 4월 29일 방영한 <사춘기> '육체미 소동 편'의 대본이 2001년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5단원 '삶과 갈등'에 20여 쪽에 걸쳐 실린 것이다. 학생들의 이해를 돕고자 참고자료로 비디오도 감상한다고 하니, 덕분에 <사춘기>는 요즈음 사춘기 소년·소녀들에게도 익숙한 드라마가 됐다.

'육체미 소동 편'은 1994년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렸던 제16회 국제청소년방송제에서 청소년 픽션 부문 3위에 오르기도 한 수작. 남성적인 몸매에 관심을 두게 된 동민이 브래지어로 만든 가짜 가슴 근육을 착용하고 다니다 선생님에게 발각되면서 곤욕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학교 신체검사에 긴장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체중계엔 깃털처럼 오르고 신장계에선 까치발을 드는 여학생들. 가슴둘레가 많이 나오게 하려고 신체검사 전 팔굽혀펴기를 하고 힘껏 숨을 들이마시는 남학생들. <사춘기>는 이렇게 평범한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모습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냈기에 사랑받은 드라마다.

그리운 <사춘기>

어느덧 <사춘기>가 종영한 지도 12년.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사춘기>를 잊지 못한다. 2층 방 창문을 열고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춘기 소년 동민이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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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나온 <사춘기>. ⓒ 자유시대사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춘기>를 다시 보는 일은 녹록지 않다. 워낙 오래전 드라마다 보니 MBC에도 '다시 보기'는커녕 변변한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MBC 프로덕션에서 편당 2∼3만원 정도에 디브이디(DVD)와 비디오를 판매하긴 하지만 동민의 사춘기만 106회에 달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또한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다. 세월과 함께 늘어져 버린 비디오테이프가 야속하기만 할 따름이다.

또 드라마에 이어 나온 다섯 권의 <사춘기> 소설이 있지만 이미 절판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사람들은 수업자료라 구하기 수월한 '육체미 소동 편'을 비롯해 몇몇 동영상과 인터넷 음원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사춘기> OST 등의 흔적으로 아련한 옛 드라마를 추억한다.


이런 정보와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곳으로는 인터넷 커뮤니티 '정준의 사춘기(cafe.daum.net/june94)'와 'MBC 청소년 성장드라마 사춘기(cafe.naver.com/127pp)'가 대표적이다. 이 중 '정준의 사춘기'에는 그 시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던 파일도 올라와 있다.


유독 <사춘기>가 그리운 것은 돌이켜 보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 사춘기에 대한 애틋함과 맞물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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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BlogIcon 지창 at 2007/09/14 17:11

    이 노래 정말 좋아하는 노랜디

  2. Commented by 설레임 at 2010/05/08 21:32

    사춘기란 드라마 잊혀지지않고 먼가 말로는 표현이 안되는
    가슴이 찡하고 아주 기억이좋았던 추억의 드라마같습니다

    나만 이런감정인줄알았는데 여러사람들이 그런느낌이였나봐요
    저도 중학교대 사춘기 감상했었는데

    벌써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어요

    -4대강반대-

  3. Commented by at 2010/07/21 14:05

    비밀댓글 입니다

'공포의 삽겹살'에게 첫사랑이 왔을 때

e s s a y 2007/08/29 20:25 posted by 곱씹다
"아니, 지금 '괴물' 봐요?!"


1994년 여름, 어머니는 길 한복판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 나이 12살이던 그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기이하다'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어머니가 그랬던 걸 보면, 아주머니의 표정이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등장을 볼 때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나 보다.


어머니의 속상한 마음은 당연하고 나를 '괴물 보듯' 한 아주머니의 표정까지 이해한다. 당시만 해도, 키 146cm에 몸무게가 74kg이나 나가는 '초특급 비만아'를 구경하기란 힘들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기상청 관측 기록상 가장 무더웠다는 그 여름, '산(山)'만 한 체격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 때문에 아주머니의 체감온도가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


'뚱뚱하다'는 놀림, 내성적으로 변한 나



그 정도로 나는 뚱뚱했다. 아니, '심하게' 뚱뚱했다. 10살 무렵부터 통통해지더니 어느덧 학교 '씨름부' 입단 제의를 끈질기게 받을 정도로 뚱뚱해진 것이다(마지못해 간 씨름부에서 운동장을 뛰라는 소리에 도망쳤다).


그래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들처럼 억울하진 않았다. 많이 먹은 만큼 응당 많이 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고 콜라를 물처럼 마셨으니 '먹었다'보단 '넣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살이 찌고 보니 뚱뚱한 아이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뉘는 듯했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아이와 뚱뚱할 뿐만 아니라 힘도 세 놀림을 면하는 아이. 이중 온순한 아이들에겐 어김없이 부한 포유류의 상징 '돼지'와 관련된 별명이 따라다녔다. 물론 거친 아이들도 뒤에서야 '돼지XX'라고 불렸을 테니 귀는 꽤 간지러웠으리라.


나는 이중 '집돼지'과에 속하면서도 이따금 '멧돼지'과로 변하는 독특한 유형이었던지라, 그나마 '적당한(?)' 놀림을 받으며 괴상한 별명이 붙었다. 수많은 별명 중 지금도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공포의 삼겹살'.


내가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도 친구들의 그런 장난 덕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13살 때, 중력은 너무도 '공평'해 무거운 만큼 느렸고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즐기는 상대방 공격수에게 유린을 당하기 일쑤였다.


또 수업시간에 소재만 생기면 '뚱뚱'과 엮은 친구들의 장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어쩌고저쩌고 말하면 "어? 거기 덕원이가 누우면 못 지나가겠다"라는 식이었다. 도대체 어떤 길이 그리도 협소하단 말인가! 그럴 때면 '공포의 삼겹살'로 변신해 응징하기도 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첫사랑과 함께 온 '첫 다이어트'



그럼에도 나는 심각하게 받아들잊 않았고, 중학생이 되고도 조금씩 들쭉날쭉할 뿐 모양새엔 변화가 없었다. 친구들의 장난이 여전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중학교 입학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학년 어느 날, 양호선생님이 찾아와 몇몇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고, 일어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뚱뚱했다. 이내 내가 호명됐고 뒤따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중등도 비만."


아이들 사이에서 '비만클럽'이라고 부른 이 특별대우는 일 년에 한 번 비만인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방과 후 건강검진이었다. 나는 다음해에도 연이어 '중등도 비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내성이 생겨 그러려니 비만클럽을 찾아 이전에도 만났던 친구들과 "왔어? 올 줄 알았지"라고 반기며 진한 '동족애'를 느꼈다.


그렇게 특별대우에도 익숙해진 같은 해 가을, 내 '비만 인생'에 역사적인 사건이 터졌다. 열다섯 사춘기 소년에게 '첫사랑'이 찾아온 것. 처음 보는 순간 사방이 뿌예지더니 이후 지나칠 때면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매일같이 마주쳤지만 내겐 말은커녕 쪽지 한 장 건넬 '용기'가 없었다.


활달했던 아이는 살이 찌면서 언젠가부터 '내성적'인 소년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체격은 키 169cm에 몸무게 85kg. 거침없이 늘어난 살과는 반대로 '자신감'은 줄어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의 대사 "이 꼴을 하고서 어떻게 그래요"가 꼭 내 마음이었다.


짝사랑에 사춘기 소년의 가슴앓이는 계속됐고, 결국 굳은 마음을 먹었다. 그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변하자"고. 온갖 '돼지'류의 별명에도 꼼짝을 않았던 내가 난생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해의 겨울방학, 다이어트엔 달리 축지법(縮地法)이 없었고 하루 밥 한 끼 그것도 달랑 한 공기만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허기진 배는 오이나 물 따위로 채웠고 가벼운 운동도 곁들였다. 사춘기 짝사랑의 간절함에 난 독했고 그 결과 한 달 만에 '10여kg 감량'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고백뿐!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기껏 살을 뺐거늘, 그녀는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말 한마디 못한 채 떠나보냈다(?). 


살 빼니 사람들도 나도 '달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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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 성공 후인 고등학교 1학년 겨울. ⓒ 이덕원


그래도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내게 값진 '선물'을 안겨다 줬다. 3학년, '비만클럽'에서 내가 '과체중'으로 특별대우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교실에서는 친구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옛 동족들은 놀라움과 함께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한칸 한칸 허리띠 안쪽으로 구멍을 뚫어가는 재미에 이후에도 다이어트는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다시 일 년여 동안 몸무게를 5kg 정도 줄였고, 반대로 키는 꾸준히 컸다.


'키 184cm에 몸무게 72kg'. 고교 입학 후 내 첫 신체검사 기록이다. 나는 변했다. 아니, 나보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먼저 변했다. 더는 뚱뚱하지 않으니 돼지와 관련된 별명도 붙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늘씬한 몸매'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태도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도.


그런 나보다 낯설어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초등학교 동창들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친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걸어도 '누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12살 적에 나를 보고 놀란 아주머니의 표정이 '웩'이었다면 그때 친구들의 표정은 '와'였던 것이다.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퇴화됐던 '자기애'가 솟아났다. 그렇게 '정상인'으로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돌아갔다. 다이어트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비만은 '정신적' 질병이기도 하다. 대개 사람들의 놀림과 거울에 비친 볼품없는 모습에 자기애는커녕 자괴하기 십상이라 작게는 자신감의 상실, 크게는 우울증을 부르기 때문이다(개중에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재발할 뻔한 비만, '다시 시작'한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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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모습에 가장 가까운 사진. ⓒ 이덕원

방심은 금물. 대학 입학 후에도 어느 정도 유지됐던 내 늘씬한 몸매는 지난해부터 형태를 잃고 말았다. 결국, 올 초 같은 키에 94kg까지 체중이 불어 비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더욱이 스물다섯 청년이 '배'에만 집중적으로 살이 쪄 이른바 'D라인'을 이루는 게 문제였다. 하릴없이 '재발'을 막고자 잊고 지낸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했고 현재 88kg이라는 고지에 이르렀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S라인', 'M라인'을 만들지 않더라도 자신감이라는 '정신적 건강'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이유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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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c o l u m n 2007/07/14 23:19 posted by 곱씹다

마초성의 <성원>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로 향한다.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설렌다. 사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 파일을 내려받거나, 디브디를 소장한 친구에게 당당히 빌려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다. 어느덧 7년 만의 ‘재회’가 아니던가. 왠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만나야지만 아련한 옛 추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열일곱 사춘기 소년이었다. 어느 무료한 주말 친구와 함께 찾은 극장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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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는 한 달에 한 번 초란이 자신의 머리카락를 깎아주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사전에 관람할 영화를 정하고 극장을 찾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기분 따라 찾은 극장 앞에서 영화를 골랐다. 또 그맘때만 해도 나는 ‘청룽(성룡)표 액션’이나 ‘장만위(장만옥)표 멜로’, 다시 말해 ‘홍콩영화’ 관람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그날은 극장 간판에 그려진 한 앳된 여인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 여인은 장만위 뺨치게 하얀 얼굴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인이 그려진 간판의 영화가 그날 극장에서 상영하는 유일한 홍콩영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망울’에 이끌려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제목은 '성원'. 영화를 보기 전. 그냥 전형적인 홍콩 멜로영화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한 시간 반이 한 잔 두 잔 마시다 바닥을 드러낸 소주병처럼 순식간에 달아나고 말았다. 그만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화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보다는 영화 속 여자주인공 ‘초란(장바이즈 분)’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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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란은 떠나가는 양파를 향해 울부짖지만 그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릴게”라는 기약 없는 다짐뿐이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영화 '성원'의 내용은 시각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는 양파(런시안치 분)와 간호사 초란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양파는 병원 자료를 점자로 기록하며 병원 한쪽 숙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밝고 따듯한 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한 여인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안과 간호사 초란이다.

어느 날, 양파는 야간 근무를 가는 초란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죽은 양파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데 우연히 영혼들이 지나치는 중간 지점에서 백만 번째 손님으로 당첨된다. 그래서 한 가지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은 양파는 초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이승으로 내려온다.


한편, 양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퍼하던 초란은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사랑 고백도 못하고 그를 떠나보낸 것에 후회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초란은 주위에서 양파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음을 느낀다.

마침내, 양파와 초란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지만 정작 헤어져야 할 시간을 알리는 유성 쇼의 시작이 머지않았다. 이별의 순간을 앞두고 예전에 별똥별을 함께 보며 빌었던 그와 그녀의 두 번째 소원이 모두 ‘그, 그녀와 함께 평생 사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무심하게도 유성 쇼가 시작하고 둘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한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미안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지만 생기발랄한 초란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특히 양파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 떠나보내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남자주인공 양파로 '몰입'됐고, 그러한 착각은 영화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영화는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고 초란에 대한 내 감정은 영화 밖 현실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코스튬플레이(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취미 문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사랑한 나머지 만화 속 여인의 사진을 다이어리에 지니고 다니는 친구들을 '비웃던' 사람이 나였다. 그랬던 내가 유사한 감정에 빠지고 만 것. 이후 나는 초란의 사진으로 방을 도배했고, 매일 밤 그녀의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홀로 가슴앓이를 하던 어느 날, 스스로 되물었다. 영화 속 여자주인공 초란으로 분한 배우 장바이즈(장백지)의 ‘미모’에 반해서 ‘장백지’라는 배우에게 빠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바이즈라는 배우에 대해 알아보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도 찾아서 봤다.


하지만 영화 '성원' 밖의 장바이즈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장바이즈라는 배우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이 아닌, 머리로 느끼는 아름다움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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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눈물은 열일곱 소년의 가슴을 후벼 팠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결국, 내가 사랑한 여인이 '성원' 속 ‘초란’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점에서도 언뜻 보면 성원 속 초란의 모습 또한 배우 장바이즈의 연기니 장바이즈의 한 모습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배우 장바이즈는 결코 ‘팔각형 젤리’와 ‘색소폰 소리’를 좋아하는 초란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일곱 소년은 오랜 시간 초란에 대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아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열병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사춘기 시절 짝사랑한 그녀는 지금까지 내 ‘이상형’으로 녹아들어 있다.


사실 그동안 영화 '성원'을 다시 보지도, 영화 속 초란과 다시 마주하지도 않은 데는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초란을 다시 만난 것이다.


초란을 다시 만나고 나는 열일곱 소년이 된 듯 애틋했던 옛사랑에 설레기만 했다. 이제 소년은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기만 했다. 누군가 첫사랑이 애틋하고 짝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아직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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