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07/28 내 인생의 드라마 속 명장면 (2)
  2. 2007/07/19 그들은 왜 '전차남'을 도왔을까?

내 인생의 드라마 속 명장면

e s s a y 2008/07/28 18:37 posted by 곱씹다


어느 흐린 날의 한적한 바닷가. 왜소한 체격에 군데군데 상처투성이인 남자가 한눈에도 버거워 보이는 서핑보드를 옆에 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도무지 이 남자와 같은 세상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자체 발광’하는 여자가 남자를 지켜보고 있다. 드디어 결심을 한 듯 남자가 바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모래사장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뒤이어 입수를 금지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여자는 남자를 만류한다. 그때, 갑자기 남자는 여자를 향해 무릎을 꿇고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고백을 듣던 여자는 되레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한다.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가 마주본 남녀를 살포시 적신다. 마치 두 사람을 다독여 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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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드라마 <전차남> 중 한 장면. ⓒ 영상 화면 갈무리


일본 드라마 <전차남>의 한 장면이다. 첫 데이트에서 취미를 “넷 서핑”이라고 말한 게 잘못 전달돼 졸지에 ‘에르메스(이토 미사키 분)’에게 ‘서핑’을 보여줘야 하는 전차남(이토 아츠시 분). 하지만 하루아침에 ‘오타쿠’가 서퍼로 변신할 리 만무하고, 결국 전차남은 바닷가에서 에르메스에게 “거짓말을 했다”면서 용서를 빈다. 그리고 에르메스는 전차남에게 외려 잘못 들은 자신의 탓이라며 “상처만큼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사과를 구한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인간적인 일이다.” 고대 그리스 희극의 대사다. 실수를 정당화하는 변명처럼 들리긴 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니 누구나 실수를 한다. 다만, 그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어떡하면 얼렁뚱땅 실수를 덮고 넘어가기 일쑤다. 이 장면은 거짓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에르메스가 진실한 전차남에게 감동하면서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다. 그러나 만약 전차남이 비를 기회삼아 실수를 덮어버렸다면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을지언정 에르메스의 마음을 얻을 순 없었을 터.  


이처럼 진실은 언제나 의미 있다. 나아가서 진실한 사람은 누구나 아름답다. 내가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유이자,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한 가지 진실을 살며시 밝힌다. 나는 사실 농구를 ‘무지’ 못한다. 드리볼을 하는 족족 ‘워킹’에 걸리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가 “농구 잘하는 사람이 멋있더라” 하기에 “잘한다”고 한 게다. 이 점 언젠가 꼭 고백하고 싶었다. 진실은 진실한 사람과 공유하는 법!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12일 작성.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2/26 17:57

    저도 큰일났어요. 노래 못하는데, 노래 잘한다고 했어요... ㅠㅠ 노래방 가는 날에 테이블 위에 올라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ㅡㅜ;

    • Commented by BlogIcon 곱씹다 at 2009/03/06 18:25

      ㅋㅋ 무릎을 꿇는 것보단 올라가신 김에 춤을 추시는 게 좋겠어요. 격한 춤에 노래가 묻히게요! ^^

그들은 왜 '전차남'을 도왔을까?

c o l u m n 2007/07/19 17:48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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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일본의 후지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전차남>. ⓒ 후지TV


실화를 바탕으로 해 2005년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궜던 이야기 <전차남(電車男)>. 지난해에는 소설에 이어 드라마와 영화가 국내에 상륙했다.

연애라곤 해본 적 없는 한 남성이 사랑을 시작하면서 '독신남(獨身男)'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게시판에 도움을 청하고, 누리꾼들은 그를 '전차남'이라 부르며 진심 어린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전차남'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내내 '지지집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왜 '전차남'을 도왔을까?

"인터넷은 '자원봉사'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차남'을 돕는 누리꾼들의 모습은 '인터넷에서의 이타주의'가 여실히 드러난 사례다. 만약 오프라인상이었다면, 서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역시 생면부지인 '전차남'을 도우려고 그토록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패트리샤 월리스는 자신의 저서 <인터넷 심리학>에서 "인터넷 (심리) 공간은 공격성이 많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타성 또한 많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누리꾼들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커뮤니티의 운영자 등으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는데, 이는 "인터넷이 자원봉사의 측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전차남>에서 '전차남'에게 도움을 주는 '독신남 게시판'도 이름 그대로 '독신남을 위해' 운영자가 만든 공간이다.


인터넷에서 이타 행동이 '도드라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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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차남>에서 '전차남'을 돕는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 ⓒ MK픽쳐스


그렇다면, 이렇게 인터넷에서 이타 행동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트리샤 월리스는 이타 행동에는 여러 상황이 영향을 미치는데, 인터넷에서는 '사람의 수'와 '유사성', '익명성' 등 때문에 남을 돕는 행동이 더 잘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① '사람의 수'


먼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같이 있는 사람의 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더 커져 남을 도울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같이 있는 사람의 수가 시시각각 변하는데다, '실제' 참여자 또한 명확하지 않아 사람들이 작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실제로 드라마 <전차남>에서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 중 '한신 타이거스 광팬'은 갑자기 컴퓨터가 고장 나자 "전차(전차남)는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며 불안해한다. 같은 맥락에서 같이 있는 사람의 수의 불명확성 때문에 '내가 도와야 한다'고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② '유사성'


또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 돕는다고 한다. 특히 인구통계학적 속성이 불분명한 인터넷에서는 태도와 관심이 중요한데,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만나는 같은 공간만으로도 자신과 유사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전차남>에서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이 '전차남'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도 '유사성'에 기인한다.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은 대부분이 독신남인데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게다가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에서지만 공통으로 폐쇄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 누구보다 서로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③ '익명성'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문제나 관심사가 있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면대면 관계에서 벗어나 인터넷에서 문제를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인터넷은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지지집단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전차남>에서 '전차남'도 사랑을 시작하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폐쇄적인 '오타쿠'의 특성상 주위에 의논할 만한 사람이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익명성이 보장된 '독신남 게시판'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역시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독신남 게시판'의 누리꾼들이 '전차남'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것도 인터넷의 익명성 덕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꾼들은 '또 다른 전차남'을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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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공(네이버 포인트)'이 안 걸려도 돕는다.(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오늘날의 인터넷은 분명히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와 같다. 인터넷에서 드러나는 사람들 이면의 '공격성'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의 얼굴은 이렇듯 이타주의의 모습이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꾼들은 인터넷 곳곳에서 '또 다른 전차남'을 돕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게시판이나 포털사이트의 서비스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말이다.

인터넷 검색기업 구글(Google)의 대표 '에릭 슈미트'는 "인터넷은 처음으로 자기 힘을 실험하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했다. 훗날의 인터넷은 따듯한 얼굴만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 까닭이다.

 

'2005년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 <전차남> 

드라마 <전차남>, 종영 후에도 '특별 편' 이어져 여전히 인기


'2005년 일본 최고의 문화상품'. <전차남>에 자주 붙는 수식어다. 소설에 이어 영화와 드라마, 만화, 연극으로 만들어져 하나같이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에 소설과 영화 모두 밀리언셀러가 됐고, 이후 후지TV에서 방영된 드라마도 매회 평균 2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전차남>은 일본 웹사이트 'Ch2'의 '독신남(獨身男)'이라는 게시판에서 2004년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야기는 '애니메이션·게임 오타쿠(마니아보다 한 분야에 심취해 있는 사람)'인 남성이 우연히 지하철에서 취객으로부터 미모의 여성을 구하고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정작 연애경험이 전무한 그는 '독신남 게시판'에 도움을 청해 누리꾼들에게 용기를 얻고,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다.


지난해에는 국내에서도 케이블.위성TV '온스타일'을 통해 드라마가 방영된 데 이어 영화도 개봉하면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이토 미사키(에르메스 역)와 이토 아츠시(전차남 역) 주연의 드라마 <전차남>은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일드(일본드라마) 마니아'의 증가를 촉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드라마는 종영 후에도 '특별 편'이 이어져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종영 1년여 만인 지난 9월 특별 편 '최후의 성전'이 방송된 데 이어 마지막 장면을 보면 추가 '특별 편'도 제작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패트리샤 월리스의 <인터넷 심리학> 


패트리샤 월리스의 <인터넷 심리학>은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심리를 고찰하는 책이다.


이 책은 2001년 출간돼 이후 급변한 인터넷 환경은 찾아볼 수 없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 행동 심리', '인터넷에서의 이타주의', '인터넷상에서의 성 정체성' 등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인터넷 심리를 온전히 담고 있다.


실제로 한림대 '인터넷 미디어 전공'의 여러 강좌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메리랜드 대학에 있는 로버트 스미스 경영대학원의 '지식 정보 경영 연구소' 소장이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1월12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