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07/18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에 막히다
  2. 2007/07/17 '인터넷미디어' 전공생들을 위한 무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3. 2007/07/15 '도전'은 언제나 설렙니다
  4. 2007/07/12 이제 ‘누리꾼’이 기자다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에 막히다

e s s a y 2007/07/18 03:44 posted by 곱씹다

한·일 대학생 교류...역사를 간직한 도쿄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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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는 끝났지만 친구는 남았다. ⓒ 김귀현


첫 출국, 그리고 '2006 한일 친구만들기' 참가.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게다가 일본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니. 다소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나는 대학생팀에 소속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팀 한국 시민기자 4명은 모두 남자다. 어리둥절한 나(24. 한림대), 누구보다 일본 친구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는 허환주(28. 한성대), 최근 공부한 일본어로 일본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다는 김귀현(26. 한양대), 일본 친구들을 사귀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유동훈(25. 경원대).

우리는 나이와 생김새는 달랐지만 설레는 가슴은 똑같았다. 여기에 우리는 같은 소망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제발 일본 여대생이 많이 나오게 해 주소서.'


첫 만남, 음식 씹는 소리만 가득


16일, 드디어 기다렸던 일본 친구들과의 첫 만남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을 만나자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각자의 시선은 서로의 도시락에만 머물렀다. 음식 씹는 소리와 함께 어색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썰렁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통역을 맡은 김경화씨가 자기소개를 제안했다. 비로소 어색한 침묵은 깨졌다. 그리고 다소 소란스런 식사가 시작됐다.

일본 대학생 시민기자는 모두 5명. 남자 셋, 여자 둘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7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왔다는 카토 마사노리(25), IT유비쿼터스를 전공하고 있다는 니시와키 야스히로(23. 시즈오카대), 다큐멘터리와 보도영상촬영을 공부한다는 요코야마 슈헤이(23. 도쿄예술대),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야마바타 사토미(22. 게이오대), 보아를 좋아하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하지모토 나나미(21. 게이오대).

자기소개는 각자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섞어서 했다. 사토미는 한국말을 꽤 잘하는 편이었고, 야스히로도 기본적인 한국말은 알아듣고 말할 줄 알았다. 한국 시민기자 중에는 김귀현씨의 일본어 실력이 돋보였다.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으로 막히다


자기소개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양국의 대학생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둘 셋씩 무리를 지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에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두 유 노우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야스히로 "She is a entertainer I like most. I have seen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the movie she stared"

나는 '콩글리시'로 물었는데 야스히로는 '잉글리시'로 대답했다. 다소 민망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소통이 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전지현으로 '통'했다.

역시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으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는 양국의 연예인이었다. 일본 친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국 연예인을 많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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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서로 궁금한 점을 묻고 있다. ⓒ 이덕원


지하철을 타고 도쿄대로 이동하는 동안 야스히로는 가끔 김종국의 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를 불렀다. 나는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동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공동취재 현장은 도쿄대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야스히로가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대장남, 대장녀가 뭐야?"


대장남, 대장녀? 알쏭달쏭한 한 말이었다. 나는 야스히로의 손짓을 보고 유추했다. '아, 한국 남성주의를 물어보는 거구나.' 즉 대장(大將)남을 표현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영어 실력과 손짓 발짓을 동원해 한국 사회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뒤이은 야스히로의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김치남, 김치녀는 뭐야?"


야스히로가 물은 건 '된장남' '된장녀'였다. '김치남' '김치녀'도 '고추장남, 고추장녀'를 말한 것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그랬단다. 한국남성 중에는 된장남 고추장남이 있고, 한국여성 중에는 된장녀 고추장녀가 있다고.

나는 다시 아는 모든 영어 단어와 내 몸의 온갖 움직임을 동원해 설명했다. 된장남과 된장녀에 대해서. 지하철의 일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역사를 기억하는 도쿄대


전지현으로 '통'하고 된장남 된장녀를 설명하다 보니 도쿄대학교 도착했다. 도쿄대는 올해 영국의 <더 타임스>가 매긴 세계 대학 순위 평가에서 19위에 오른 명문대다.


우리 한국 대학생들은 도쿄대를 처음 방문하며 '세계적인 명문대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대학은 한국의 대학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도쿄대의 첫 인상은 '명문대'보다는 일본의 지난날을 온전히 기억하는 '역사'로 다가왔다. 캠퍼스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은 단연 인상적이다. 야스다 강당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일본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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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대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 ⓒ 유동훈


동행한 일본 친구 마사노리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답게 야스다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해줬다.

"야스다 사건은 1969년 1월18일 당시 일본 학생운동조직인 전국공투회의(전공투)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강당을 점거농성하던 중 8,500명의 경찰 기동대에 의해 전원 연행된 사건이야."


도쿄대에는 맨홀조차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도쿄대의 한 맨홀 표면에는 도쿄대의 전신인 '제국대학'으로 교명이 쓰여있다. '제국대학'에서 '도쿄제국대학'으로 다시 개칭한 것이 1897년임을 고려하면 100년은 족히 넘었다는 증거다.

야스다 강당 뒤편에 숲으로 둘러싸인 연못 '산시로' 역시 사연을 품고 있다. 연못의 이름은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 <산시로>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산시로 연못은 소설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소다.

이 밖에 지진 대비 설계 기술이 없었던 시기에 만들어져 기둥이 세 아름은 족히 되는 건물도 인상 깊었다.

가을의 끝자락, 은행나무가 많은 도쿄대는 노랗게 물들어 아름다웠다. 우리 한일 대학생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점심식사 때부터 시작된 일본 친구들과의 만남은 밤늦은 시간에 끝났다. 참 짧은 순간이었다. 일본 친구들이 전철을 타고 떠날 때는 머리가 멍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때 우린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생 시민기자 4명 중 3명은 곧 졸업을 한다. 그래도 다시 서울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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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지난 16일 도쿄대를 방문했다. ⓒ 허환주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12월2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인터넷미디어' 전공생들을 위한 무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e s s a y 2007/07/17 21:59 posted by 곱씹다

올초 어느 날 저녁, 나는 ‘창피한’ 마음에 무작정 동네를 달렸다. 그리고 달리는 내내 ‘다짐’했다.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기사를 쓰자!”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창피함은 이내 ‘기쁨’으로 바뀌었다. 사실 내가 창피했던 이유는 ‘처음’ 시민기자로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가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땀에 흠뻑 젖어 돌아와 다시 보니 기사가 채택 된 것.


당시만 해도 <오마이뉴스>는 편집부에서 검토하지 않았거나 검토 중인 기사도 ‘생나무’라 표시했는데, 이를 처음 접한 나는 기사가 채택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참고로 <오마이뉴스>에서는 채택하지 않은 글이나 사진 따위를 ‘생나무’, 채택한 기사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을 ‘잉걸’이라 일컫는다. 잉걸기사 중 일부는 기사의 가치에 따라 ‘섹션톱(sT)’, ‘메인서브(mS)’, ‘메인톱(mT)’등으로 나뉘어 해당 면에 배치된다. 


그날 이후, 나는 잉걸기사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노출되는 섹션면 머리기사나 메인면 기사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한 선배의 표현대로 ‘더듬이’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처음에는 잉걸기사만 올리던 내가 섹션면 머리기사, 메인면 기사 아니라 당당히 <오마이뉴스>의 메인면 중앙을 장식하는 메인톱기사도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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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빛나리 부자(父子)' 덕에 집안이 밝아 졌어요"라는 제목의 내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머리기사로 실렸다. ⓒ 이덕원

 
그렇게 기사를 쓰는데 한창 빠져있던 지난여름, 내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모집 공고. 나는 대학생 인턴을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해 <오마이뉴스>에서 ‘인턴기자’로 다시 기사를 쓰게 됐다. 짧다면 짧은 4주의 기간이었지만 나는 <오마이뉴스>에서 더없이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먼저, 다단계피해자들을 만나 신종 다단계업체를 고발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이버대학의 대학생활을 전하며 좋은 경험을 쌓았다. 또 기사기획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때로는 평가를 위해 받은 기사에 경쟁하며 인턴 동기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었다.


결국, 나는 학과 전공을 통해 배운 지식을 토대로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기사 쓰는 방법을, 다시 인턴기자로 활동하며 취재하는 방법을 익힌 셈이다. ‘인터넷미디어’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복된' 중 하나는 이처럼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많은 매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비단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아니더라도 <미디어다음>([주]다음커뮤니케이션)의 블로거 기자, <에스비에스>(SBS)의 U포터를 비롯해 수많은 인터넷매체에 인터넷 미디어 전공생들을 위한 ‘무대’의 문은 항상 열려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인터넷매체 곳곳에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사람들의 감동을 일으키는 ‘한림대 인터넷미디어 전공생’들의 기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10월19일 작성.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인터넷 미디어 전공'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도전'은 언제나 설렙니다

d i a r y 2007/07/15 01:29 posted by 곱씹다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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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기사 원고료로 몇 권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이 공간은 가장 갱신이 자주 이뤄져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지난 석 달여간 내버려뒀네요.

사실 다른 어떤 메뉴보다도 이곳에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형식에 연연해 행동에 옮기지 못했네요. 글을 쓰고도 지우기 일쑤였고, 나중에는 엄두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곱씹다’를 처음 열며 ‘1인 감성 웹진’이라는 거창한 휘장을 둘러치긴 했으나 개인 홈페이지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이곳은 개인 홈페이지에서 운영자의 단상을 싣는 게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더불어 운영자가 공부해가는 과정에서 작성한 기사의 취재 뒷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함도 있었습니다.


각설하고 말씀드리자면, 본인에게는 ‘곱씹다’ 내에서 가장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 먹은 마음처럼 이곳에 편히 글을 적고자 다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기왕 떠드는 김에 몇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본인의 계획이 '엑티브엑스(ActiveX) 쓰나미'로 인해 더욱 남루해진 ‘곱씹다’에게 새 옷을 입힐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또 하나의 공부거리가 생겨 그 일을 잠시 차치할까 합니다.

아마도 새 옷을 입히는 일은 많이 늦어져 본인 앞에 있는 큰 산을 하나를 넘고 난 내년 초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늘 그렇듯 남루한 곳이나마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그때는 반드시 더 단단한 모습으로 찾아뵙겠다고 약속합니다.


갑작스레 닥친 공부거리가 무엇이냐 하면 이달 말부터 시작하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대학생 연수입니다. 이번 연수는 비록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도, 하리라 믿지도 않았던 고시원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고시원 생활도 나름대로 운치는 있기에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돌이켜보면, 지난겨울 고시원 생활 동안 골방에서 외로움과 마주하며 홀로 마신 술이 꽤 맛났지요.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많이도 떠들었습니다. 그럼 짧은 기간이지만 돌아올 땐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겠습니다.
'도전'은 언제나 설렙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5일 작성.

이제 ‘누리꾼’이 기자다

p l a n 2007/07/12 15:05 posted by 곱씹다

‘시민기자’제의 <오마이뉴스>와 ‘블로거 기자’단의 <미디어다음>



얼마 전 국내 포털사이트 뉴스에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는 ‘누구나 글을 쓰는 공간’인데, 기자가 기사 중간마다 자신을 ‘필자’라고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달린 댓글을 봤다. 댓글의 타당성은 몰라도 댓글을 단 누리꾼이 ‘인터넷 미디어’가 지닌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인터넷상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쓴다. 누리꾼들은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적고, 관심사에 따라 커뮤니티에 가입해 자신의 의견을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기자들이 작성한 인터넷 뉴스에 댓글을 다는데 그치지 않고 이견을 구체화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이 각종 인터넷 매체의 ‘시민기자’나 ‘블로거 기자’ 활동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시민기자제’를, 인터넷 미디어 <미디어몹>, <미디어다음>을 통해 ‘블로그 저널리즘’을 살펴보자.


‘시민기자제’를 근간으로 하는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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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를 시초로 오늘날에는 많은 일간지와 전문지가 ‘시민기자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표방한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제를 토대로 시민기자의 소소한 일상 속 ‘감동’, 본업을 살린 현장의 ‘생생함’, 정형화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이 담긴 콘텐츠를 생산해왔다. 2006년 현재에 이르러 오마이뉴스는 '4만여 명'이 넘는 시민기자를 근간으로 국내 인터넷신문 1위가 된 데 이어 최근에는 일본을 기점으로 국외시장 진출도 시작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성공 요인인 시민기자제는 그동안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가 ‘상근기자’와 ‘시민기자’ 간의 ‘갈등’이다. 시민기자들은 오마이뉴스의 기사 선택과 편집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고 지난 3월에는 시민기자와 직업기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마저 불거져 나왔다.


결국, 지난 4월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상근기자와 시민기자를 통합해 '뉴스게릴라본부'로 일원화하는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조직개편안의 골자는 기동취재팀을 제외한 모든 상근기자는 취재와 기사 작성 역할을 시민기자에게 넘겨주고 편집과 지원만을 맡는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의 이번 조직개편은 상근기자와 시민기자 간의 관계를 개선할 뿐만 아니라 시민기자의 기사 편집 자원 부족으로 발생했던 오보를 예방하고 기사 선택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블로그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미디어몹, 미디어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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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다음 블로거 뉴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블로그 저널리즘은 대표적인 블로그 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에 이어 최근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인터넷 미디어 미디어다음(http://media.daum.net)이 가세해 추구하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의 것이 된다'는 콘셉트를 내세운 미디어몹은 국내 블로그 저널리즘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미디어다음은 지난해 말부터는 국내 최초로 ‘블로거 기자단’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미디어몹은 ‘딴지일보’ 전 편집장을 주축으로 '르 지라시(le zirashi)'라는 딴지일보 형식의 주간 인터넷신문과 개인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재치와 풍자 등 딴지일보의 성격과 블로거들이 수시로 공급하는 뉴스가 결합한 형태다.
2004년 미디어몹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자신들조차 ‘실험적인 시도’라고 할 만큼 국내에 블로거 저널리즘이 도입되기엔 ‘시기상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 하지만 애초의 우려와는 달리 미디어몹은 뉴스의 배치 및 편집권을 대대적으로 블로거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넘겨주면서 비교적 블로거 저널리즘의 특징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블로거 기자단을 시작한 지 반 년여가 지난 미디어다음은 포털사이트 강점을 앞세워 사회 쟁점 및 이슈에 대해 누리꾼들의 댓글로 ‘토론의 장’을 잘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 수는 만여 명에 달하는 실정이고, 블로거 뉴스의 조회 수도 최대 ‘수백만’을 기록해 그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반면 총체적으로 블로그 저널리즘도 풀어야 할 ‘과제’를 많이 안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블로거들이 생산한 뉴스의 ‘질’ 향상이다. 현재 블로거 뉴스는 시민기자 모델과 커뮤니티 활동 사이에 어중간하게 머무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블로거들이 기존 직업기자들의 기사 쓰기를 흉내 낼 필요는 없지만 기사의 기본적인 '정확성’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국내 블로그 활동자 중 ‘약 10%’만이 직접 콘텐츠를 생산할 뿐 나머지는 일명 '퍼뮤니케이션'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뒤따르는 저작권 침해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블로그 저널리즘을 아직 뉴스를 공급하는 '미디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콘텐츠의 질 향상, 저작권 침해는 블로그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뉴스매체가 블로거에 대한 현실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보완할 수 있는 문제다.


특히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뉴스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먼저 미디어다음의 블로거 기자단은 블로그 저널리즘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블로거들의 ‘자율성’부터 떨어진다. 또 미디어몹이 외부 블로그에 열려있는 데 비해 미디어다음은 자체 블로그에만 ‘국한’돼 있다. 다시 말해, 다음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가 아니라면 블로거 기자단으로 활동할 수 없다는 얘기다.
또 블로거 뉴스가 미디어다음의 성공적인 섹션 ‘아고라’, ‘세계엔’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기사의 질 이외에도 커뮤니티 섹션과 별반 다르지 않은 블로그 뉴스 섹션의 ‘레이아웃’ 탓도 있다.

미디어다음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기사 생산을 비롯해 기사 평가와 기사 배치에 대한 권한을 블로거들에게 대폭 이양해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또 자사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다음 블로그가 아닌 외부 블로그에도 열어야만 블로그 저널리즘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기자제와 블로그 저널리즘의 ‘미래’


앞으로 시민기자제는 오마이뉴스의 최근 조직개편처럼 시민기자가 기사를 작성하고 직업기자가 이를 평가 편집 배치하는 등의 ‘조정’ 활동만 맡는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다만, 오마이뉴스 조직개편이 자칫 시민기자의 전문성만을 더 요구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시민기자제라는 본래의 의도를 져버린 채 시민기자는 이미 시민기자가 아닌 ‘저 보수’의 ‘프리랜서 기자’로 전락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 블로거 기자단보다 상대적으로 자율성이 떨어지는 시민기자제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시민기자제의 한계 또한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이미 자체적인 블로그 '오블'의 게시물 중 일부를 골라 '메인 페이지'에 뉴스와 함께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른 매체의 블로거들이 '퍼뮤니케이션'에 그치는 데 비해 오블의 블로거들은 뉴스의 형식을 갖춘 게시물들을 생산하고 있다. 또 앞으로 오마이뉴스는 더 많은 블로거를 유입하고 오블의 게시물 노출을 '활성화' 하기 위해 오블과의 연동도 강화할 계획에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블로거 기자단은 돈을 받고 활동하는 ‘페이드 블로거(Paid Bloger)’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페이드 블로거들이 등장했고 누리꾼들 역시 페이드 블로거들에게 몰리고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블로그 서비스가 처음 도입되고 ‘홈페이지’를 대체하는 형태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블로그 뉴스의 질적 향상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페이드 블로거 유치가 불가피하다. 다만, 이때도 미디어와 페이드 블로거의 ‘관계’가 중요한데 미디어는 블로거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교육과 지원의 역할만을 맡아야 한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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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5월16일 작성.


한림대 인터넷미디어 전공 웹진 '도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