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12/02 모든 <인순이>여, 네 탓이 아니다
  2. 2007/07/18 구글과 아마존은 어떻게 웹2.0을 입었나
  3. 2007/07/17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인터넷의 자정능력을 엿보다 (2)

모든 <인순이>여, 네 탓이 아니다

r e v i e w 2007/12/02 16:51 posted by 곱씹다
인순이(김현주 분)는 외롭다. 어디 외로운 사람이 인순이뿐이겠느냐마는 그녀에겐 남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때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것. 죗값을 치르고 사회로 나왔지만 그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마이너리티'를 위한 응원가, '너 자신을 사랑하렴'

이런 인순이의 바람은 단지 사랑받는 것뿐이다. 그냥 여느 사람들처럼. 물론 편견으로 가득 찬 사회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전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만약에 하느님이 있다면 절 왜 만들었냐고 묻고 싶어요. 전 저주 받았어요." 그래서 그녀는 취직도 인간관계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 좌절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인순이는 다시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고교시절 선생님인 경준(엄효섭 분)이 일러준 대로 주문을 외우면서. "괜찮아! 괜찮아, 인순아! 난 착해. 난 예뻐. 난 사랑스러워. 난 훌륭해. 난 누구보다 특별해. 특별한 존재는 원래 시련이 많은 거야."


KBS 수·목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이하 <인순이>)는 이렇게 인순이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눈에 '마이너리티(소수자)'를 위한 응원가임을 알 수 있다. 성공한 소수자로 대표되는 혼혈 가수 인순이의 이름을 따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가 부른 <거위의 꿈>의 노랫말 역시 더없이 잘 맞물린다.

그렇다면 <인순이>가 외치는 응원 구호는? '너 자신을 사랑하렴'쯤이다. "네가 널 안 사랑하는데 누가 널 사랑해?"라며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적시한다. 실제 인순이를 버티게 하는 희망은 '나르시시즘(자기애)'에서 비롯된다. 자살하려다 외려 사람을 구한 그녀의 "살고 싶다. 살고 싶어졌다. 간절히, 그리고 멋있게! 죽도록 사랑받는 그날까지!"라는 내레이션처럼.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보여주는 '풍자극'  
 
<인순이>는 한발 나아가 사실 문제는 인순이에게 있지 않다고 꼬집는다. "오늘 같은 일 한두 번 겪어? 네 탓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왜 당당하지 못해?" 인순이를 위로하는 경준의 말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회가 문제라는 일침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결정적으로 사회의 부정적 모습을 보여주면서 설득력을 보탠다. 그리고 이 모습은 분명히 드라마 밖 현실과 맞닿아 있다. 때론 <인순이>가 신랄한 풍자극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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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의 친구 상우(김민준 분). ⓒ KBS

무엇보다 이를 극대화하는 것은 인순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속물근성'이다. 중학교시절 친구 상우(김민준 분)는 '인텔리(지식층)'로 불리는 메이저 방송국 기자고, 죽은 줄만 알았던 엄마 선영(나영희 분)은 '화려함'이 강조되는 유명 연예인이다. 마이너리티인 인순이와 달리 '메이저리티(다수자)' 중에서도 '엘리트'인 이들에겐 이중성이 짙게 묻어난다. 물론 이는 같은 인텔리인 상우의 동료나 올챙이 적 모르는 상우 가족도 마찬가지.

특히 방송국 문화부 기자인 상우는 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잘 드러내는 인물이다. 올곧은 기자인 그도 인순이 앞에선 그녀를 낙인찍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선생님은커녕 백수라는 그녀의 말에 실망하고 이어 살인 전과자라는 고백에 뒷걸음질친다. 이후에는 인순이를 친구로서의 진심보단 지성인으로서의 자기 위안으로 대한다. 

그러니 상우와 엄마임에도 인순이를 보듬지 못하는 선영은 '있는 그대로의 인순이'를 사랑하지 않는다. 외려 그녀를 배려한답시고 포장하기 급급할 뿐. 실은 자신들을 위해서다.   

학벌주의, 노이즈 마케팅, 그리고 인터넷 여론몰이

이를테면, 인순이의 학력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위조되고 만다. 인순이의 학력을 묻는 후배 재은(이인혜 분)에게 상우는 "학교가 뭐가 중요해?"라면서도 "영국 왕립 디자인 스쿨"이라고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이다. 이에 재은과 상우의 동료 진태(나윤 분) 역시 있지도 않은 학교 이름을 듣고 "유학파구나"라고 놀란다.  

모르긴 몰라도 문화부 기자이고 뉴스를 맡는 아나운서인 이들이라면, 얼마 전까지 떠들썩했던 문화예술계의 '학력 위조 파문'도 다뤘을 터. 타파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면에 학벌주의에 연연하는 이중적 모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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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의 엄마 선영(나영희 분). ⓒ KBS

선영은 한 술 더 뜬다. 공개적으로 인순이의 학력을 속이는 것이다. '숨겨둔 딸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졸지에 인순이를 '이탈리아 유학파'로 만든다. 더구나 이마저도 인기가 시들해진 선영이 '노이즈 마케팅'으로 겸사겸사 한 행동. 여성잡지나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서 본 익숙한 광경이다.  

심지어 인순이는 사회의 '괴이한' 모습과도 맞닥뜨린다.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스타로 만드는 사회 말이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는 인순이의 동영상이 삽시간에 인터넷에 퍼지면서 누리꾼의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덕분에 "지하철녀"로 불리게 된 그녀는 숱한 'OO녀'처럼 일순간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이런 그녀를 엄마와 언론이 가만둘 리 없다. 이에 인순이는 몇몇 'OO녀'가 그랬듯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고 드디어 원하던 대로 사랑받는 사람이 된 듯하다.  

이처럼 <인순이>는 '인터넷 여론몰이'를 전면에 내세운다. "중요한 민중적 메타포(은유)"라는 순기능과 "대안적 미디어의 산물이 만들어낸 한시적 소모품에 불과하다"라는 역기능을 모두 언급하면서. 
 
그러나 인순이에게는 후자의 역기능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지하철녀'지, '있는 그대로의 그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 전과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니 그보다 작은 흠이라도 그들이 만든 '지하철녀'와 어긋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수 있는 '가짜 사랑'이라는 얘기다. 

마침내 인순이는 다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깨달을 것이다. 어차피 그래야만 진정 그녀를 사랑해줄 누군가도 나타날 테니. 

'모든 인순이'에게 건네는 세 마디 

이렇듯 인순이가 사는 사회는 가혹하다. 그리고 이를 보는 뒷맛이 씁쓸한 것은 드라마 밖에 있는 인순이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결국 <인순이>는 '세상의 모든 인순이'에게 나지막이 세 마디 말을 건네는 셈이다. 네 탓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그래야 다른 사람도 널 사랑할 거라고.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구글과 아마존은 어떻게 웹2.0을 입었나

r e v i e w 2007/07/18 00:20 posted by 곱씹다

우메다 모치오의 <웹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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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메다 모치오의 <웹 진화론> ⓒ 재인

 <웹 진화론>은 오늘날 ‘웹2.0’이라는 최신 동향 아래 인터넷의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 우메다 모치오는 실리콘밸리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경험과 낙관주의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이를 살펴본다.

 

처음 책을 펼치면 늘 그렇듯 나오는 게 다소 '뻔한 추천의 글'이다. 하지만 <웹 진화론>의 경우 이 부분부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일단 국내 IT 업계의 대표주자 세 사람이 쓴 것이니 한 번 읽게 되고 기대감을 높인다. 그런데 책을 덮기 전 다시 앞으로 돌아와 한 번 더 읽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앞에서 읽었던 추천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 사람부터 우메다 모치오의 이야기에 진정 공감했다는 방증일 터이다.


아마존과 구글의 성공사례로 본 웹2.0 

 

먼저 저자는 인터넷이 진화하는 과정을 인터넷검색업체 구글과 인터넷도서업체 아마존의 성공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아마존과 구글은 ‘불특정 다수가 능동적인 표현자라는 낙관 아래 이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기술과 서비스 개발 철학', 즉 웹2.0을 실현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초기 누구도 성공하리라 믿지 않았던 아마존은 독창적인 리뷰와 추천 기능을 선보여, 반스 앤드 노블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먼지 쌓인 책들로 '전체 판매도서의 3분의 1'을 달성했다. 또 야후라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에 맞선 구글은 무료등록서비스 '애드센스'를 통해 무수히 많은 웹사이트의 내용을 자동으로 평가해, 각 내용에 적합한 광고를 배치해주는 저비용 인프라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이것이 바로 웹2.0 시대에 공룡의 머리가 아닌 꼬리에서 기회를 포착한, 이른바 ‘롱 테일(긴 꼬리) 전략’이다. 


저자는 블로그를 미워하는 미디어 기득권층에 대해서도 통찰한다.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특권을 누리는 소수만이 정보를 발신하고 다수가 이를 수신하는 구조였지만 그러한 소수의 특권은 '치프혁명(IT 기기의 성능이 향상되지만 가격은 내려가는 현상)'의 기반 아래 블로그가 탄생하며 보편화했고, 때문에 다수가 정보를 발신하고 다시 다수가 이를 수신하는 구조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블로그로 대표되는 이러한 구조를 '총표현사회'라고 명명한다. 저자는 기존의 미디어 기득권층이 이러한 특권을 잃었기 때문에 블로그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디어 기득권층은 "블로그의 글은 대부분 쓰레기"라며 블로그에서 생산된 콘텐츠의 가치를 인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려고 든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존립 기반이 불안정해졌으니 밥벌이 걱정에 블로그의 영향력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후반부에 던지는 질문, 새로운 세대에게 남기는 고민


"IT와 인터넷의 발달이 장기의 세계에 일으킨 최대 변화는 '장기의 실력 향상'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고속도로가 개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의 종점 부근에는 엄청난 정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IT와 인터넷의 발달이 장기의 세계에 일으킨 최대 변화는 '장기의 실력 향상'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고속도로가 개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의 종점 부근에는 엄청난 정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진화를 설명하는 내내 낙관적이던 저자도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일본 장기의 명인 하부 요시하루가 그에게 말한 '고속도로론'을 들어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각 분야에서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덕분에 고속도로 종점까지는 달려갈 수 있다. 그렇게 학습의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전체적인 수준은 높아지지만, 정작 달려간 종점 부근엔 정체가 심해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려면 전혀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그들이 고속도로 종점까지 달려오며 여태까지 얻은 능력은 하찮은 게 돼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단번에 고속도로 종점까지 달려온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야 할까. 저자는 책의 끄트머리에서 새로운 세대에게 무거운 고민을 남긴다.


후기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IT 관련 정보 습득이야말로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지름길이고, 이에 새로운 개념이 제시될 때마다 정보습득수단으로 IT 관련 도서를 찾는다. 하지만 정작 IT 관련 전문용어가 많고, 외국의 사례가 대부분이다 보니 좀처럼 쉬이 읽을 수 없고 이해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국내에도 웹2.0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며 관련도서 또한 많이 나왔지만, 역시 어려운 전문용어가 넘치고 적절한 사례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웹 진화론>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충실하다. 

 

출판사 재인, 가격 12,000원.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11월1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인터넷의 자정능력을 엿보다

c o l u m n 2007/07/17 20:31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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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게시판에서 게시물에 달린 댓글. ⓒ 인터넷 화면 갈무리


매년 이맘때면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파괴’를 경계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드높다. 또 그때마다 우리말 파괴의 '주범'이라 불리며 경계의 표적이 되는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우리말 파괴의 '주범'이 되기까지


사실 지금 인터넷이 짊어진 우리말 파괴의 책임은 90년대 초중반 보편화된 ‘무선호출기’와 비슷한 시기 천리안, 나우누리 등으로 알려진 ‘PC통신’이 원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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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메시지 속에서 사용하는 줄임말. ⓒ 이덕원

당시 무선호출기는 기기에서 숫자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486(사랑해)’, ‘8282(빨리빨리)’ 등의 ‘숫자문자’가 사용되었고, PC통신은 느린 특성 탓에 대화를 주고받으며 ‘방가(반갑다)’ 등의 ‘줄임말’과 ‘>,<(찡그린 표정)’ 등의 ‘이모티콘’을 써야 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무선호출기의 숫자문자와 PC통신의 줄임말, 이모티콘은 휴대전화가 보편화되며 ‘문자메시지’ 속으로, 개인용 컴퓨터와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며 ‘누리세상’ 속으로 옮겨온 것이다.
더욱이 어느덧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사람들의 생활 속 일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숫자문자와 줄임말, 이모티콘은 빠르게 진화했고 이러한 은어들은 다시 문자메시지 속으로 이어져 사용됐다.

이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나 메신저 대화창에는 국어사전에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부 사람들 외에는 좀처럼 ‘해독’하기 어려운 말들이 난무했고, 이에 인터넷이 우리말을 파괴하고 세대 간의 대화 장벽을 형성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인터넷은 아직 '어린아이', 성장과 함께 자정능력도 갖출 것


모든 매체에는 ‘자정능력’이 있다. 인터넷 또한 그렇다.
물론 수년간 그래 왔고 그래서 쓴소리를 들어왔듯, 인터넷상에서는 매일같이 ‘무수한’ 은어들이 만들어져 퍼지고 있다. 이처럼 언뜻 보면 인터넷은 자정능력이라곤 없이 영영 우리말을 파괴하기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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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한 뉴스에 달린 댓글. ⓒ 인터넷 화면 갈무리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 인터넷은 자정능력이 있다. 다만, “처음으로 자기의 힘을 시험하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인터넷기업 구글의 최고경영자 에릭 슈미트의 말처럼 아직 어린아이라 걸음이 더딜 뿐 성장하기위해 분명 한 걸음 씩 앞으로 내딛고 있다. 그리고 성장의 발걸음은 우리말 파괴에 대한 자정능력도 동반할 것이다.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인터넷의 자정능력, '쌍방향성'에서 비롯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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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한 블로거가 만든 뉴스에 달린 댓글.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인터넷의 자정능력은 매체 특성인 ‘쌍방향성’에서 비롯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인터넷의 자정능력 또한 쌍방향성을 가장 반영하는 ‘댓글’에서 ‘작은 걸음’을 찾아볼 수 있다. 댓글은 자신의 의견이나 정보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론 화장실벽에 낙서를 하듯 정제되지 않은 낙서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댓글 중에서 글이나 다른 댓글 속 잘못 쓴 우리말을 ‘지적’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물론 쌍방향성을 지닌 댓글은 잘못된 정보나 글을 평가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애초부터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최근 댓글들을 살펴보면 점점 잘못 쓴 우리말을 바로잡고자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 매체의 환경 변화로 누리꾼이 보다 ‘전문적’인 글을 쓰는 시대가 왔다는 점도 앞으로 성장과 더불어 우리말 파괴에 대한 자정능력을 갖출 것이라는 기대를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 이전부터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인터넷을 통해 자주 글을 써온 누리꾼들이 이제 전문적으로 글을 쓰며 우리말 쓰기 또한 드러내 평가받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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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진 '남녀불꽃노동당'의 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


이런 현상은 무엇보다 최근 더욱 성장하고 있는 ‘시민기자 저널리즘’과 ‘블로그 저널리즘’을 통해 도드라지고 있다. 많은 누리꾼이 기자로 글을 쓰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말을 ‘바르게’ 알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한 시민기자는 “시민기자가 되고 글쓰기에 중독되다 보니 어느덧 ‘글쟁이’가 다 된 것 같다”고 말하며 흐뭇해했다.
최근 인터넷에 불어온 ‘유시시(UCC, User Created Contents)' 바람도 누리꾼이 커뮤니티에서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체'가 되면서 우리말을 정화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넷이 과거 우리말을 파괴했다는 데는 가타부타 할 것 없이 옳다. 하지만 앞으로 어린아이였던 인터넷이 성장하며 미디어 개발자들과 누리꾼들의 노력으로 자정능력을 키운다면 우리말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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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16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미디어다음 기사 보기]

  1. Commented by BlogIcon egoing at 2007/08/27 14:54

    자정 능력을 저도 믿습니다만, 저 역시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고는 대화가 힘드내요 ^^ <- 요것보세요.

    • Commented by BlogIcon 곱씹다 at 2007/08/28 18:30

      네, 'egoing'님 말씀처럼 온라인상에서나 문자메시지에서도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고 문자로 대화하기란 어렵지요. 보편화한 이모티콘의 '적절한 사용'이야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맞춤법 등을 무시한 글쓰기는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