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07/19 볼품없는 그의 철가방이 유난히 빛난다
  2. 2007/07/18 나는 '중국집 아들'이라 행복하다 (4)
  3. 2007/07/17 '중국집'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
  4. 2007/07/16 어머니에게 배운 콩국수 요리법

볼품없는 그의 철가방이 유난히 빛난다

i n t e r v i e w 2007/07/19 18:37 posted by 곱씹다

그릇 위 '쪽지'에 보람 느끼는 중국집 배달원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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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눈이 내린 후 바람이 매서워진 30일, 이씨가 그날 첫 배달을 가고 있다. ⓒ 이덕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화 한 통'이면 맛있는 음식을 싣고 달려오는 사람들. 바로 '음식 배달원'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사람들은 안방에서 편안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오늘날에는 배달 안 되는 음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음식 배달문화가 보편화했다. 자장면, 피자, 치킨, 족발에서 도시락까지. 오죽하면 '배달(倍達)'의 민족이자 '배달(配達)'의 민족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음식 배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건 역시 '중국집 배달원'이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도 '신속 배달' 사명을 수호하고자 매서운 바람과 마주선 어느 중국집 배달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겨울보다 힘든 여름, 눈비 내리는 날 늘어나는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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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중국집 배달' 관련 기사에 달린 누리꾼의 댓글들. ⓒ 인터넷 화면 갈무리


춘천의 한 중국집에서 일하는 이상훈(34·가명)씨는 올해로 중국음식 배달 10년차 베테랑이다. 이씨는 "대학입시에 좌절하고 돈을 벌기 위해 스무 살에 처음 (중국음식 배달을) 시작했다"며 "중간에 몇 년 외도했던 것을 제외해도 어느덧 이 일만 10년"이라고 소회를 털어놨다.

대부분 중국집 배달원들은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 영업 준비를 마친 오전 11시부터 본격적으로 배달을 시작한다. 배달은 보통 밤 9시 30분까지 계속되는데, 그릇은 바쁜 시간을 피해 틈틈이 교대로 찾는다고 한다.
이씨가 일하는 중국집에는 이씨를 포함해 총 3명의 배달원이 있다. 이씨는 "평일에는 한 사람당 하루 25곳 정도 (배달을) 가고, 주말에는 한 사람당 하루 35곳 정도 (배달을)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배달하다 보면 유독 일하기 힘든 계절이나 날씨가 있기 마련. 그런데 이씨는 의외로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여름에는 시원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내리쬐는 햇볕에 달아오른 아스팔트 때문에 여름이 더 힘들다. 게다가 겨울엔 배달을 다녀와 가게에서 몸이라도 녹이지만, 여름에는 요리하는 열기에 가게 안이 그야말로 '찜통'이다. 배달 장사로 먹고 사는 '영세한' 중국집에 냉방기가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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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해 7월 16일 카메라에 담은 오토바이 배달원 모습. ⓒ 선대식


물론 배달하러 다니기 위험한 건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다. 이씨는 "아무래도 비나 눈이 오는 날, 또는 (길이 미끄러운) 그 다음날엔 오토바이를 타기 조심스럽다"면서 "사고도 자주 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씨는 정작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날도 "갑자기 비나 눈이 내릴 때"라며 "밖에서 먹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안에서) 시켜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씨는 이달 초에도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고 한다. 배달 가던 길에 승합차가 이씨에게 달려든 것. 이씨는 "다행히 빨리 피해 다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익숙한 듯 "다친 데도 없고 오토바이도 멀쩡해 엎질러진 음식 값만 받고 다시 일했다"고 말했다.

'속옷' 차림의 여자 손님에 당황, 그릇 위 '쪽지'에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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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의 철가방. 볼품없을지언정 은은히 빛난다. ⓒ 이덕원

'손님은 왕'이라는 말도 있지만 배달하다 보면 불쾌한 손님을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이씨는 "가끔 '야, 거기에다 놔'라며 다짜고짜 반말하는 손님들이 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나보다 어린 사람이 그럴 때는 정말 기분 상한다"고 하소연했다.

음식 배달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렇듯 아직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씨는 "아직까지 음식 배달은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하류계층으로 보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특히 중국집 배달원을 그렇게 본다"며 "그래서인지 (20대 초·중반의) 젊은 사람들은 중국음식 배달이 더 창피하다고 생각해 피자 배달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배달 음식이라는 게 실내에서 편하게 먹으려고 시키는 것이다 보니 '황당한' 일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배달 갔을 때 손님이 '속옷' 차림으로 음식을 받는 경우가 그 중 하나. 이씨는 "특히 여자 손님이 속옷만 입고 나오면 배달 간 사람이 더 민망하다"고 털어놨다.

또 소방서와 더불어 장난전화의 표적이 되는 곳이 중국집이다 보니, 기껏 배달 갔다가 헛걸음치는 일도 부지기수. 물론 '발신자번호표시서비스'가 보편화하면서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번호를 안 뜨게 하고 장난전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아깝지만 음식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 외에 배달 갔다가 개에 물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풀어놓고 기르거나 목줄이 긴 개가 낯선 사람인 배달원을 갑자기 덮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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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가 직접 기자의 수첩에 적은 쪽지 내용. ⓒ 이덕원

"배달원 아저씨. 정말 맛있게 먹었어욤. ^^ 수거하세요."


반면, 한 달여 전 이씨가 찾으러 간 그릇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붙어있었다. 이씨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이렇게 그릇에 쪽지를 넣어놓는 손님들이 있다"며 "(그 외에) 그릇에 과일이나 과자를 담아놓는 손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이씨는 "맛있게 먹었다는 말에 그저 보람을 느낄 뿐"이라며 심지어 "(손님이) 음식을 깨끗이 다 먹은 그릇만 봐도 기분 좋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씨는 반대로 음식이 맛없었다는 말을 듣거나 많이 남아있을 때면 속상하다고 한다. 음식 맛이 중국집 사장에겐 매출이고 주방장에겐 자존심일지 몰라도, 정작 "손님한테 '직접 전하는' 배달원에겐 '자신의 얼굴'과 같다"는 것이 이씨의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씨가 매일같이 들고 다니는 철가방은 볼품없을지언정 유난히 '빛나' 보였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나는 '중국집 아들'이라 행복하다

e s s a y 2007/07/18 02:43 posted by 곱씹다

상상 속에나 있었던 내 이름을 건 중국집이 실제로 생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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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 이덕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슈퍼마켓 아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슈퍼마켓 아들은 어머니에게 조르지 않아도 맛있는 과자, 아이스크림을 매일 실컷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고교시절부터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부모님이 작은 '중국집'을 차리신 것이다. 사실 사업에 실패하신 아버지가 중국집 배달부터 다시 시작해 주방보조, 주방장을 거쳐 7년 만에 어렵게 이룬 쾌거였다. 실제로 맛있는 자장면, 탕수육을 쉬이 먹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고교 땐 반에서 인기 '짱', 비결은 바로···


어릴 적 내가 맛있는 과자, 아이스크림 때문에 슈퍼마켓 아들을 부러워했듯, 친구들은 맛있는 자장면, 탕수육 때문에 '중국집 아들'인 나를 부러워했다.

당연히 '너는 자장면 짬뽕 탕수육을 만날 먹을 수 있냐', '자장면 짬뽕 탕수육도 만날 먹으면 질리지 않느냐', '차림표에 있는 중국요리들 다 먹어봤느냐', '중국요리 중에 뭐가 제일 맛있느냐' 등 친구들의 질문도 끊임없이 들었다.


나는 주말이면 종종 그렇게 부러워하는 친구들을 가게로 데리고 가 자장면, 짬뽕은 물론이거니와 탕수육이나 팔보채까지 함께 먹었다.

그리고 그렇게 먹은 친구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와 같은 반 다른 친구들을 북돋았다.

"너희 난자완스라는 거 먹어봤어? 내가 덕원이네 가게 가서 먹었는데 진짜 맛있어! 글쎄, 탕수육은 비교도 안 된다니까."


아마 안 나가서 그렇지, 당시 학급선거에 나갔다면 반장도 '떼 놓은 당상'이었으리라.

내가 지은 가게 이름 '하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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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 분)'은 자장면을 좋아한다. ⓒ MBC


부모님은 시골에 있는 'OO반점(지명을 딴 상호인지라 밝히지 않음)'이라는 중국집을 작년까지 운영하시다 처분하셔야 했다. 아버지는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병원을 드나드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일 년여 동안 부모님은 병원에 다니시며 건강을 회복하셨고, 지난 10월에는 가족들의 힘을 모아 시내에 다시 중국집을 차릴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가게 터, 아버지가 직원, 내가 가게 상호를 정하기로 맡은 것이었다.

당시 내가 상호를 지으면서 약속한 것은 '이번엔 식상하지 않은 상호를 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는 어려운 한자의 조합을 놓고 고민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쉽게 지으시라고 농담 삼아 예를 들었던 것이 통신언어 '하이루'였다.

아버지는 뜻밖에도 쉽고 뜻도 좋다며 가게 상호를 하이루로 결정하셨다.

'하이루'에 전화를 하면 이렇게 받는다. "하이룹니다~"


"내가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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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대머리라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갈 일은 없다"고 자랑하신다. ⓒ 이덕원


그렇게 하이루의 문을 열고 자리를 잡아갈 무렵,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아버지의 제안에 올 초부터 중국집을 시작하셨던 이모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도저히 운영을 못 하시겠다는 것. 아버지는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이모부가 운영하시던 중국집도 맡게 되셨다.

나는 부모님 기력이 예전만 못하셔 중국집 하나도 힘에 부쳐 하시는데, 가게를 하나 더 맡으신다니 건강이 다시 나빠지시진 않을까 덜컥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11월 초 어느 날 저녁, 약주를 드셨다고 운전기사 노릇을 하러 오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새로 맡게 될 중국집으로 갔다.

"너 들어오면서 아무것도 못 봤어?"

"보긴 뭘?"

"'간판' 말이야, 바꿨잖아."

"그래? 보고 올게."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대뜸 가게 간판을 못 보고 들어왔느냐고 물으셨다. 운영을 맡기에 앞서 가게 상호 변경을 고민하시더니 무엇으로 정하셨나 궁금한 마음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간판에 적힌 상호는 너무 '익숙'했다. '덕원루', 가게 상호는 다름 아닌 내 이름을 딴 것이었다.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더니 조금 지나자 괜스레 쑥스러워 다시 웃음이 나왔다.

내게 덕원루가 익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모님이 처음 중국집을 시작하시고 가게 상호를 정할 때마다 거론됐던 '덕원반점', '덕원각', '덕원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게로 들어가 부모님에게 말했다. "내가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니까!"


"덕원루엔 덕원이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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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 속에나 있었던' 덕원루가 실제로 생겼다. ⓒ 이덕원


나는 '중국집 아들'이라 행복하다. 자장면 짬뽕을 비롯해 탕수육 같은 중국요리도 언제나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더욱이 '상상 속에나 있었던' 내 이름을 건 중국집도 '실제로' 생겼다.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한예슬 분)'이 안다면 참말로 부러워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덕원루가 하이루에 비해 매출이 낮다는 점이다. 하이루에서 일하시는 형은 그 이유를 "덕원루에 덕원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농담 섞어 말씀하셨다.

붕어빵이라고 붕어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붕어 모양은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 이름을 건 가게인 만큼 사명감이 뒤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조만간 '덕원루'의 전단지를 들고 직접 나서야겠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12월8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1. Commented by 은재 at 2009/02/26 18:33

    고요한, 퇴근 무렵 사무실에서 저 혼자 빵! 터져갖고....ㅠㅜ;;; 글 참 재미나요 ^^

  2. Commented by 양군 at 2009/04/16 08:35

    하이루 짬뽕 먹고 싶다~~~ ㅠㅜ

'중국집' 아들의 아버지 이야기

e s s a y 2007/07/17 23:16 posted by 곱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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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볶아 따끈따끈한 자장. ⓒ 이덕원


3주 전, 부모님이 ‘중국집’을 새로 개업하셨다. 부모님은 추석연휴, 하루도 쉬지 않고 준비하시더니 드디어 가게 문을 연 것이다.

우리 가게는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 두 분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중국집이다.

영업을 시작하고 일주일 여가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가게회식을 하고 있으니 운전기사 노릇 할 겸 와”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가게로 갔다.

가게에 달린 작은 방에서 하는 조촐한 회식이었지만, 내가 가게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는 이미 무르익고 있었다. 가게 삼촌들에게 개업 전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맛있는' 아버지의 음식, 그런데 '오래' 걸린다

개업 초창기다 보니, 회식자리에선 자연스레 가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배달을 하는 한 삼촌은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에 대해 손님들이 한결같이 “맛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더욱이 내 옆에 앉은 삼촌도 “내가 15년 동안 중국음식점에서 일했는데 아버지만큼 음식을 맛있게 하시는 분도 없었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아버지의 음식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만드신 자장면, 짬뽕이 가장 맛있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먹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인사치레라 감안해 들어도 삼촌들의 말씀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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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 ⓒ 이덕원


다만, 그 삼촌은 “한 가지 흠이라면 아버지가 손이 조금 느리시다”며 “그래서 배달이 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촌은 “하지만 그 역시 한 그릇을 만드시더라도 정성을 쏟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촌의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어머니에게 여쭸다.

“엄마, 아빠가 원래 느리셨나?”

“빠르진 않았지.”

“그럼 느려지신 거지? 아무래도 오래 쉬셔서 그런가 봐, 그렇지?”

“글쎄, 아빠가 해내질 못해.”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전'


사실 아버지가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부모님은 이전에도 중국집을 하셨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중국집에서 일하신 것을 제외하고 가게를 차려 직접 운영하신 것만 7년이다. 그때도 역시 아버지가 주방장, 어머니가 주방보조, 삼촌과 형이 배달을 하는 아담한 가게였다.

부모님이 가게를 차리시고 3, 4년이 지났을 즈음,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여름 방학을 맞아 가게에서 두 달여간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하는 일이래 봤자 전화 받고, 서빙하고, 청소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여름에 냉방기 없는 중국집 내부는 찜통처럼 더워 녹록지 않았다.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나는 점심때가 지나가고 전쟁터가 된 테이블을 치우다 선풍기 앞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두세 시간을 주방에서 요리만 하신 아버지가 뒷문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누구보다 이 더위에 일하시는 아버지가 걱정돼 따라갔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고 있던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차 따라 버리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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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샌 프라이팬을 드는 것도 힘에 부쳐 보이시는 아버지(참고로 아버지는 가수 'DOC'가 부른 'DOC와 춤을'의 노랫말처럼 당당히 '박박 밀은 멋쟁이'시다). ⓒ 이덕원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는 한여름, 아버지는 매년 그렇게 뜨거운 불 앞에서 고무신에 땀이 가득 찰 정도로 무더위와 맞서고 있으셨다.

그래도 부모님은 그나마 여름이 낫다고 말씀하곤 하셨다. 가게를 하던 곳이 시골이었던지라 문을 닫기도 전에 버스가 끊기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만 해도 차가 없었던 부모님은 한겨울이면 매일 한 시간 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겨울바람을 뚫고 출퇴근하시곤 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그렇게 7년을 온전히 일하셨고, 고된 몸만큼 건강도 나빠지시고 말았다. 결국, 아버지는 당뇨, 어머니는 고혈압으로 병원을 드나드셔야 했고, 가게도 그만둬야 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부모님은 병원에 다니며 휴식을 취하셨고, 덕분에 건강도 많이 회복하셨다. 그리고 지난달부터 건강도 좋아졌으니 다시 가게를 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아들이 곧 졸업해서 취직을 할 테니 쉬시라”고 만류했지만, 한사코 “쉬엄쉬엄할 거니까 걱정하지마라”고 하시는 부모님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가게 자리를 고르셨고, 아버지는 직원을 구하셨고, 나는 가게 상호를 지어 지금의 가게를 새로 차린 것이다.

자신의 일에 진정 ‘보람’을 느끼시는 아버지


회식 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신 ‘진짜 이유’는 자신보다 아들이 삼촌들과 세대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 대화도 나누며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아버지의 의도대로 옆에 앉은 삼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회식 막바지, 한 삼촌은 음식 칭찬에 뒤이어 “농담이 아니라 진로를 정하지 않았으면 아버지에게 음식을 전수받아 뒤를 잇는 것을 생각해봐”라며 “중국집은 주인이 주방장을 해야 돈을 버는데 네 나이에 아버지가 하시는 요리를 전수받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뒤늦게 안 것이지만 어머니의 말씀이 아버지는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 이어받기를 바라셨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아들이 공부하기에는 글렀다고 보신 건가’ 하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서운했다. 하지만 이후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난 내가 하는 일이 좋아, 그래서 대학 가서 흐지부지할 거라면 이어받는 게 낫다는 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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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자장을 볶으시는 모습. ⓒ 이덕원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시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짓는 아버지의 표정이야말로 진정 행복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비록 이제 음식을 하시는 게 느려졌지만,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음식을 만드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와 어머니에겐 언제까지나 '아버지가 만드신 음식'이 '최고'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9월16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어머니에게 배운 콩국수 요리법

c o l u m n 2007/07/16 17:52 posted by 곱씹다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송송 맺히는 여름, 뭔가 시원한 음식으로 더위를 달래고 싶다. 그래서 여름이면 더욱 사랑받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콩국수다.


실제로 작년까지 부모님이 십여 년 동안 중국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이렇게 찌는 듯 더운 여름이면 주요리라 할 수 있는 자장면의 입지를 위협하는 존재가 여름에만 파는 콩국수라고 말하곤 하셨다.


때문에 여름에는 콩국수가 자장면만큼이나 많이 팔려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욕실에서 씻고 나오며 다시 이마에 땀이 흐르는 오늘 같은 날,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고자 어머니에게 콩국수를 해달라고 졸랐다.


* 재료

백태(메주를 만드는 데 쓰는 노란 콩) - 대형마트나 동네 쌀가게에 가면 구입할 수 있다.

국수 - 슈퍼마켓에서 파는 일반 국수사리

오이, 들깨, 얼음,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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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어머니는 콩의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세 시간 정도 물에 불리곤 하신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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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불린 콩을 십오 분 정도 센 불에 삶는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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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히 삶은 콩을 찬물에 헹구면서 손으로 비벼 껍질을 벗겨 낸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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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가정에 있는 믹서에 콩을 넣고 간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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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만 해도 고소한 콩물을 차게 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는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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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국수를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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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가 익는 사이 콩국수에 넣을 오이를 채썰기 한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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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수를 조금 건져 찬물에 씻어 익었는지 확인해보고, 익었으면 찬물에 빠르게 헹군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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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릇에 미리 준비한 국수, 얼음, 콩물, 오이, 깨를 순서대로 넣는다. ⓒ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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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 끝, 이제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으면 된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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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하고 담백한 콩국수에는 칼칼하고 시원한 열무김치가 제격이다. ⓒ 이덕원


어머니는 "사람에 따라 콩국수를 만들며 처음 콩을 갈 때 땅콩이나 땅콩크림, 또는 깨를 넣기도 한다"며 "처음 콩국수를 만들 땐 나도 넣고 했는데 아무래도 콩만으로 맛을 내야 깔끔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아버지가 늘 어머니의 콩국수가 정말 맛있다기에 '콩국수 요리가 어렵고 어머니는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콩국수의 요리법은 단순했고 어머니만의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콩국수가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꾸미지 않아 깔끔한 뒷맛과 더운 여름에도 세 시간을 불려, 삶고, 벗기고, 갈며 흘리는 땀만큼 어머니의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덕원

덧붙이는 글 -


2006년 8월13일 작성. 


<야후미디어> 'e세상기자 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