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0/01/29 <지붕킥>의 정음 씨에게 부치는 <1Q84> 추천 글
  2. 2007/08/29 '공포의 삽겹살'에게 첫사랑이 왔을 때
  3. 2007/07/19 당신은 춘천과 어떤 '인연'이 있나요?
  4. 2007/07/19 <춘천 가는 기차>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5. 2007/07/14 “아직도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지붕킥>의 정음 씨에게 부치는 <1Q84> 추천 글

r e v i e w 2010/01/29 17:07 posted by 곱씹다
이 달 초 방송을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몰라 곤혹을 치르더군요. 취업 준비 하랴 과외 하랴, 정신없죠? 에쿠니 가오리나 오쿠다 히데오가 더 익숙한 세대기도 할 테고요. 하긴 <상실의 시대>로 일찌감치 국내에서 팬덤을 형성한 하루키지만, 21세기에 여전히 하루키를 읽는다는 건 얼마간 ‘길티 플레져’였는지도 몰라요. 일부 악의적 비판을 걷어 낸다손 쳐도, 주력하는 장편에서 그다지 성장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거든요. 
 
반면 어느덧 생활인으로서 현실의 쳇바퀴에 오른 독자에게 하루키의 소설 속 심드렁한 주인공의 삶은, 출근 전쟁을 치르는 만원 버스에서 듣는 “눈이 참 예쁘게 오네요”라는 라디오 디제이의 멘트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었고요. 물론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해변의 카프카>를 기점으로 좀 더 깊고 너른 세계로 나아가려고 했었죠. 여러모로 설익은 탓에 되레 한계만 드러냈지만요. 

그런데도 하루키의 <1Q84>를 권하는 건, 그것도 다 이 책을 내놓기 전까지의 소리기 때문이에요. <1Q84>에서 하루키는 문학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본의 사회 병리를 두루 건드리는가 하면, 치밀한 구성과 도저한 서사성으로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하거든요. 

의미심장한 건 그러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능란하게 밀어붙인다는 거고요. 요컨대 특유의 메타포와 더불어 댄디즘이에요. 교향곡과 재즈, 소설, 여행기가 예의 오마주처럼 등장하고 옷차림과 요리, 심지어 성애까지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걸 잊지 않는 거죠.

<1Q84>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이자 두 사람이 ‘1Q84’라는 의문의 세계에 들어선 뒤 겪는 판타지예요.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되는 킬러 아오마메의 이야기와 한 소녀를 만나면서 그로테스크한 사건에 휘말리는 소설가 지망생 덴고의 이야기가 장을 번갈아 나오는 식이고요. 

결국 하루키는 현실과 판타지, 체제와 반체제가 기실 뒤틀려 연결되는 ‘뫼비우스의 띠’ 같다고 말하는 듯해요. 그럼 아오마메와 덴고는 그 이음매를 찾아 합일될 수 있을까요? 지훈 씨랑 함께 올 여름 출간될 3권의 답을 기다리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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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삽겹살'에게 첫사랑이 왔을 때

e s s a y 2007/08/29 20:25 posted by 곱씹다
"아니, 지금 '괴물' 봐요?!"


1994년 여름, 어머니는 길 한복판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내 나이 12살이던 그때,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기이하다'는 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이다.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어머니가 그랬던 걸 보면, 아주머니의 표정이 영화 <괴물>에서 괴물의 등장을 볼 때처럼 경악을 금치 못했나 보다.


어머니의 속상한 마음은 당연하고 나를 '괴물 보듯' 한 아주머니의 표정까지 이해한다. 당시만 해도, 키 146cm에 몸무게가 74kg이나 나가는 '초특급 비만아'를 구경하기란 힘들었으니 말이다. 더불어 기상청 관측 기록상 가장 무더웠다는 그 여름, '산(山)'만 한 체격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 때문에 아주머니의 체감온도가 올라갔을 수도 있겠다.


'뚱뚱하다'는 놀림, 내성적으로 변한 나



그 정도로 나는 뚱뚱했다. 아니, '심하게' 뚱뚱했다. 10살 무렵부터 통통해지더니 어느덧 학교 '씨름부' 입단 제의를 끈질기게 받을 정도로 뚱뚱해진 것이다(마지못해 간 씨름부에서 운동장을 뛰라는 소리에 도망쳤다).


그래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들처럼 억울하진 않았다. 많이 먹은 만큼 응당 많이 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살고 콜라를 물처럼 마셨으니 '먹었다'보단 '넣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살이 찌고 보니 뚱뚱한 아이들은 대부분 두 부류로 나뉘는 듯했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놀림을 받는 아이와 뚱뚱할 뿐만 아니라 힘도 세 놀림을 면하는 아이. 이중 온순한 아이들에겐 어김없이 부한 포유류의 상징 '돼지'와 관련된 별명이 따라다녔다. 물론 거친 아이들도 뒤에서야 '돼지XX'라고 불렸을 테니 귀는 꽤 간지러웠으리라.


나는 이중 '집돼지'과에 속하면서도 이따금 '멧돼지'과로 변하는 독특한 유형이었던지라, 그나마 '적당한(?)' 놀림을 받으며 괴상한 별명이 붙었다. 수많은 별명 중 지금도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공포의 삼겹살'.


내가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도 친구들의 그런 장난 덕택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13살 때, 중력은 너무도 '공평'해 무거운 만큼 느렸고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즐기는 상대방 공격수에게 유린을 당하기 일쑤였다.


또 수업시간에 소재만 생기면 '뚱뚱'과 엮은 친구들의 장난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어쩌고저쩌고 말하면 "어? 거기 덕원이가 누우면 못 지나가겠다"라는 식이었다. 도대체 어떤 길이 그리도 협소하단 말인가! 그럴 때면 '공포의 삼겹살'로 변신해 응징하기도 했지만, 미봉책에 불과했다.


첫사랑과 함께 온 '첫 다이어트'



그럼에도 나는 심각하게 받아들잊 않았고, 중학생이 되고도 조금씩 들쭉날쭉할 뿐 모양새엔 변화가 없었다. 친구들의 장난이 여전했던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중학교 입학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학년 어느 날, 양호선생님이 찾아와 몇몇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고, 일어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뚱뚱했다. 이내 내가 호명됐고 뒤따른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중등도 비만."


아이들 사이에서 '비만클럽'이라고 부른 이 특별대우는 일 년에 한 번 비만인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방과 후 건강검진이었다. 나는 다음해에도 연이어 '중등도 비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내성이 생겨 그러려니 비만클럽을 찾아 이전에도 만났던 친구들과 "왔어? 올 줄 알았지"라고 반기며 진한 '동족애'를 느꼈다.


그렇게 특별대우에도 익숙해진 같은 해 가을, 내 '비만 인생'에 역사적인 사건이 터졌다. 열다섯 사춘기 소년에게 '첫사랑'이 찾아온 것. 처음 보는 순간 사방이 뿌예지더니 이후 지나칠 때면 가슴이 방망이질을 쳤다. 매일같이 마주쳤지만 내겐 말은커녕 쪽지 한 장 건넬 '용기'가 없었다.


활달했던 아이는 살이 찌면서 언젠가부터 '내성적'인 소년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 체격은 키 169cm에 몸무게 85kg. 거침없이 늘어난 살과는 반대로 '자신감'은 줄어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의 대사 "이 꼴을 하고서 어떻게 그래요"가 꼭 내 마음이었다.


짝사랑에 사춘기 소년의 가슴앓이는 계속됐고, 결국 굳은 마음을 먹었다. 그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변하자"고. 온갖 '돼지'류의 별명에도 꼼짝을 않았던 내가 난생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해의 겨울방학, 다이어트엔 달리 축지법(縮地法)이 없었고 하루 밥 한 끼 그것도 달랑 한 공기만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허기진 배는 오이나 물 따위로 채웠고 가벼운 운동도 곁들였다. 사춘기 짝사랑의 간절함에 난 독했고 그 결과 한 달 만에 '10여kg 감량'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고백뿐!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기껏 살을 뺐거늘, 그녀는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말 한마디 못한 채 떠나보냈다(?). 


살 빼니 사람들도 나도 '달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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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어트 성공 후인 고등학교 1학년 겨울. ⓒ 이덕원


그래도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내게 값진 '선물'을 안겨다 줬다. 3학년, '비만클럽'에서 내가 '과체중'으로 특별대우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교실에서는 친구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옛 동족들은 놀라움과 함께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한칸 한칸 허리띠 안쪽으로 구멍을 뚫어가는 재미에 이후에도 다이어트는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식사량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다시 일 년여 동안 몸무게를 5kg 정도 줄였고, 반대로 키는 꾸준히 컸다.


'키 184cm에 몸무게 72kg'. 고교 입학 후 내 첫 신체검사 기록이다. 나는 변했다. 아니, 나보다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먼저 변했다. 더는 뚱뚱하지 않으니 돼지와 관련된 별명도 붙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늘씬한 몸매'에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태도도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도.


그런 나보다 낯설어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초등학교 동창들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친구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걸어도 '누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12살 적에 나를 보고 놀란 아주머니의 표정이 '웩'이었다면 그때 친구들의 표정은 '와'였던 것이다.


나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퇴화됐던 '자기애'가 솟아났다. 그렇게 '정상인'으로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활달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돌아갔다. 다이어트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비만은 '정신적' 질병이기도 하다. 대개 사람들의 놀림과 거울에 비친 볼품없는 모습에 자기애는커녕 자괴하기 십상이라 작게는 자신감의 상실, 크게는 우울증을 부르기 때문이다(개중에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재발할 뻔한 비만, '다시 시작'한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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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모습에 가장 가까운 사진. ⓒ 이덕원

방심은 금물. 대학 입학 후에도 어느 정도 유지됐던 내 늘씬한 몸매는 지난해부터 형태를 잃고 말았다. 결국, 올 초 같은 키에 94kg까지 체중이 불어 비만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더욱이 스물다섯 청년이 '배'에만 집중적으로 살이 쪄 이른바 'D라인'을 이루는 게 문제였다. 하릴없이 '재발'을 막고자 잊고 지낸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했고 현재 88kg이라는 고지에 이르렀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S라인', 'M라인'을 만들지 않더라도 자신감이라는 '정신적 건강'은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이유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당신은 춘천과 어떤 '인연'이 있나요?

d i a r y 2007/07/19 20:57 posted by 곱씹다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지난 25일 별세한 고(故)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에는 이렇듯 춘천에 대한 동경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천득 선생은 왜 그토록 춘천을 그리워한 걸까요.

피천득 선생이 열일곱 때 처음 동경을 방문했습니다. 이때 그는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꼬의 집에 머물렀는데, 아사꼬는 그를 오빠같이 따랐습니다. 그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사꼬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고 작은 손수건과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줬습니다. 


그 후로도 피천득 선생은 두 번 더 아사꼬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한국전쟁이 지나고 그가 세 번째 동경을 찾았을 때는, 그만큼 세월도 흘러 아사꼬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난 뒤였습니다.

결국, 아사꼬를 향한 피천득 선생의 애틋한 마음은 아사꼬가 다니던 성심여학교로, 다시 당시 캠퍼스가 있던 성심여자대학(현 한림대캠퍼스)에 대한 동경으로 옮겨온 겁니다.

▲ 수필집 <인연> ⓒ 샘터사

피천득 선생은 아사꼬와의 '인연'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면서 수필을 끝맺습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여러분은 춘천과 어떤 '인연'이 있나요? '옛사랑과의 데이트', '대학시절 엠티', '홀로 떠난 여행',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추억'을 인터뷰합니다.

이곳에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당신의 추억을 들려주세요. 



[관련 기사] <춘천 가는 기차>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5일 작성.

<춘천 가는 기차>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d i a r y 2007/07/19 20:57 posted by 곱씹다

“춘천 살아? 아, 옛날에 첫사랑이랑 데이트 갔었는데….”


타지 사람들을 만나 춘천에 살고 있다고 하면 이따금 돌아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춘천 하면, '옛사랑과의 데이트'를 비롯해 '대학시절 엠티', '무작정 떠난 여행' 등을 떠올리곤 합니다. 오랜만에 맞이한 추억에 설레는 모습엔, ‘춘천 사는 이’에 대한 부러움마저 섞여있지요. 그래서 어김없이 이어지는 말이 '언제 한 번 춘천에 갈 테니 닭갈비 사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면, 가수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처럼 춘천에 대한 낭만을 간직한 셈입니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 춘천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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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추억여행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이덕원


하지만 정작 춘천을 찾아 제가 닭갈비 한턱내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바쁜 일상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에 춘천에 사는 제가 춘천의 이야기를 전하면, 직접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더불어 몰랐던 춘천 이야기, 변화하는 춘천 이야기를 전해 언젠가 사람들이 춘천을 찾았을 때 좀 더 알찬 여행이 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춘천 가는 기차>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만든 이유입니다.
문을 연 취지가 그렇듯, 이곳은 춘천에 대한 '로망'을 지닌 모든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때문에 춘천에 대한 '여러분의 이야기'가 모두 기사입니다. 실제로 ‘당신의 추억’ 이라는 카테고리에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이를 바탕으로 취재해 기사를 작성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추억여행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관련 기사] 당신은 춘천과 어떤 '인연'이 있나요?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7년 6월5일 작성.

 

“아직도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c o l u m n 2007/07/14 23:19 posted by 곱씹다

마초성의 <성원>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로 향한다.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설렌다. 사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 파일을 내려받거나, 디브디를 소장한 친구에게 당당히 빌려서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는 그렇게 만나고 싶지 않다. 어느덧 7년 만의 ‘재회’가 아니던가. 왠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만나야지만 아련한 옛 추억을 오롯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와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열일곱 사춘기 소년이었다. 어느 무료한 주말 친구와 함께 찾은 극장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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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파는 한 달에 한 번 초란이 자신의 머리카락를 깎아주는 날이 가장 행복하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사전에 관람할 영화를 정하고 극장을 찾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기분 따라 찾은 극장 앞에서 영화를 골랐다. 또 그맘때만 해도 나는 ‘청룽(성룡)표 액션’이나 ‘장만위(장만옥)표 멜로’, 다시 말해 ‘홍콩영화’ 관람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그날은 극장 간판에 그려진 한 앳된 여인이 내 눈길을 끌었다. 그 여인은 장만위 뺨치게 하얀 얼굴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인이 그려진 간판의 영화가 그날 극장에서 상영하는 유일한 홍콩영화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망울’에 이끌려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영화 제목은 '성원'. 영화를 보기 전. 그냥 전형적인 홍콩 멜로영화가 아닐까 예상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하고 한 시간 반이 한 잔 두 잔 마시다 바닥을 드러낸 소주병처럼 순식간에 달아나고 말았다. 그만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영화 속에 빠져들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보다는 영화 속 여자주인공 ‘초란(장바이즈 분)’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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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란은 떠나가는 양파를 향해 울부짖지만 그는 조금씩 사라져가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릴게”라는 기약 없는 다짐뿐이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영화 '성원'의 내용은 시각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는 양파(런시안치 분)와 간호사 초란의 슬픈 사랑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양파는 병원 자료를 점자로 기록하며 병원 한쪽 숙소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밝고 따듯한 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한 여인이 있는데 그녀가 바로 안과 간호사 초란이다.

어느 날, 양파는 야간 근무를 가는 초란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죽은 양파는 하늘나라로 올라가는데 우연히 영혼들이 지나치는 중간 지점에서 백만 번째 손님으로 당첨된다. 그래서 한 가지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은 양파는 초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자 이승으로 내려온다.


한편, 양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퍼하던 초란은 자신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리고 사랑 고백도 못하고 그를 떠나보낸 것에 후회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초란은 주위에서 양파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그가 자신의 곁에 있음을 느낀다.

마침내, 양파와 초란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지만 정작 헤어져야 할 시간을 알리는 유성 쇼의 시작이 머지않았다. 이별의 순간을 앞두고 예전에 별똥별을 함께 보며 빌었던 그와 그녀의 두 번째 소원이 모두 ‘그, 그녀와 함께 평생 사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지만 무심하게도 유성 쇼가 시작하고 둘은 가슴 아픈 이별을 맞이한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미안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지만 생기발랄한 초란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특히 양파를 그리워하며, 다시 만나 떠나보내며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남자주인공 양파로 '몰입'됐고, 그러한 착각은 영화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영화는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렸고 초란에 대한 내 감정은 영화 밖 현실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코스튬플레이(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취미 문화)'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사랑한 나머지 만화 속 여인의 사진을 다이어리에 지니고 다니는 친구들을 '비웃던' 사람이 나였다. 그랬던 내가 유사한 감정에 빠지고 만 것. 이후 나는 초란의 사진으로 방을 도배했고, 매일 밤 그녀의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홀로 가슴앓이를 하던 어느 날, 스스로 되물었다. 영화 속 여자주인공 초란으로 분한 배우 장바이즈(장백지)의 ‘미모’에 반해서 ‘장백지’라는 배우에게 빠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영화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장바이즈라는 배우에 대해 알아보고, 그녀가 출연한 영화도 찾아서 봤다.


하지만 영화 '성원' 밖의 장바이즈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장바이즈라는 배우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사랑이 아닌, 머리로 느끼는 아름다움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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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눈물은 열일곱 소년의 가슴을 후벼 팠다. ⓒ 골든 하베스트 컴퍼니


결국, 내가 사랑한 여인이 '성원' 속 ‘초란’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점에서도 언뜻 보면 성원 속 초란의 모습 또한 배우 장바이즈의 연기니 장바이즈의 한 모습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배우 장바이즈는 결코 ‘팔각형 젤리’와 ‘색소폰 소리’를 좋아하는 초란이 아니었다.


그렇게 열일곱 소년은 오랜 시간 초란에 대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아야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 열병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사춘기 시절 짝사랑한 그녀는 지금까지 내 ‘이상형’으로 녹아들어 있다.


사실 그동안 영화 '성원'을 다시 보지도, 영화 속 초란과 다시 마주하지도 않은 데는 첫사랑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고이 간직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초란을 다시 만난 것이다.


초란을 다시 만나고 나는 열일곱 소년이 된 듯 애틋했던 옛사랑에 설레기만 했다. 이제 소년은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랑스럽기만 했다. 누군가 첫사랑이 애틋하고 짝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아직 청년은 영화 밖의 초란을 기다린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2006년 6월10일 작성.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