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11/17 1호차 7석에 앉은 면접기
  2. 2007/07/04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나, 이제 감히 많은 것을 바랍니다

1호차 7석에 앉은 면접기

e s s a y 2009/11/17 19:47 posted by 곱씹다
‘1호차 7석’이라···. 왠지 마음에 드는 좌석이었다. 행운의 숫자 7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그렇게 유치한 사람은 아니다. 더구나 머리를 쥐어짜도 7이라는 숫자의 덕을 본 기억 같은 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또 1과 7이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 식으로 딱히 아름다운 숫자의 조합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등교육 내내 평균을 뎅겅 깎아먹은 수학은 언제나 내 적용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저 1과 7의 늘씬한 맵시가 좋았을 뿐이다. 표현을 하자면 처음 보았지만 처음 본 것 같지 않은 풍경, 마치 이베리아 반도의 탱고를 추는 여인, 하지만 그 여인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도. 가령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저마다 몸매대로 숫자를 지정받는 파시즘 국가에서라면, 결코 내 몫으로 돌아올 리 없는 좌석이었다. 아마도 그곳에선 쌀보리 게임에 최적화된 내 배를 적발하고는 ‘5호차 55석’쯤에 내던질 터이다. 그것도 아주 쿨하게. 그러니 주어진 현실에 기꺼웠을밖에. 복고적인 시절은 하잘것없는 일도 은혜롭게 하는 마력을 지닌 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차는 예의 존재 이유에 충실해 나를 비롯한 승객들을 청량리역에 토해 놨고, 이에 질세라 나도 상경 목적에 충실하게 입사 면접을 봤다. 면접장에 간 건지 찜질방에 간 건지 나는 긴장한 탓에 족히 한 바가지의 육수를 손바닥으로 쏟아냈다. 아닌 게 아니라 몇 번의 면접이면 파시즘 국가에서 1호차 7석에 앉는 일 정도는 문제도 아닐 것 같았다. 한 시간짜리 모래시계도 열차와 나처럼 충실히 흘라갔고, 나는 오줌을 지리지 않았으니 썩 나쁘지 않은 면접이었다고 자위하며 다시 청량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떠나려 하는데 이게 웬걸, 좌석을 확인하고자 본 차표엔 친숙한 탱고 여인이 있었다. 화들짝 놀라 오전의 것이 아닌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다. 하지만 차표에 똬리를 틀고 있는 건 분명히 하행선의 일란성 쌍둥이였다. TV 시리즈 <트윈 픽스>의 데일 쿠퍼가 좋아할 만한, 그야말로 기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춘천 가는 기차에 올라 한날 왕복으로 같은 좌석,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좌석의 차표를 우연히 받을 확률을 계산하려 했다. 그러나 영역 밖의 일은 역시 수학과 친구에게 의뢰하기로 하고 이내 관뒀다. 대신 나는 이쯤 되면 순순히 길조로 받아들이는 게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며 쾌재를 불렀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치렀던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말인즉 몸을 싣고 꿈도 싣고 내 마음 모두 실었건만, 정작 내 자리는 없다는 내용.  입석으로라도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기어이 7이라는 녀석이 내 행운의 숫자로 등재되길 거부하고 만 것이다. 결국 다음엔 ‘1호차 11석’을 노려야겠다, 고 마음먹다 이내 중요한 건 마음이겠지, 하는 마음을 나는 또 먹었다. 우걱우걱.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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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으나, 이제 감히 많은 것을 바랍니다

e s s a y 2007/07/04 23:57 posted by 곱씹다

'여의도'로 띄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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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원국회의사당 전경 ⓒ 대한민국 국회 홈페이지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정치하시는 분들보다 똑똑하지도 학벌이 좋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감히 대한민국을 더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춘천에서 살고 있는 저는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하곤 합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청량리역을 찾아보셨는지요? 찾아보셨다면 그곳 구석구석에 쓰러져있는 노숙인들은 보셨는지요? 다시 묻겠습니다. 압구정, 명동에 있는 명품관을 찾아보셨는지요? 찾아보셨다면 주차장에 즐비한 외제차들은 보셨는지요?


저는 봤습니다. 역전과 지하철에 누워있는 배고픈 노숙인들을, 명품관에 들어가고 나오는 외제차들을 말입니다. 분명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빈부의 격차이며, 때문에 부유층의 소비는 자유라 말씀하시겠지요. 빈곤층의 소외는 게으름의 탓이요, 그럼에도 국가는 사회복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씀하시겠지요.


교과서 읽는 소리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빈곤층 없이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살자고 떼를 쓰지 않습니다. 부유층의 소비까지 규제하자고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생각하는 정치를 바랍니다. 세상에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돈이 아닌 사람이라 믿는 까닭입니다. 아직 순수해 믿고 앞으로도 순수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사람을 보세요. 진정 사람을 사랑해주세요.


21세기에 대한민국은 단기간의 산업화와 세계화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먼저 선배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지난날 너무도 급히 달려온 대한민국은 사람보다는 돈을 진리로 깨닫게 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다수의 이익을 옹호하고 돈과 권력이라는 힘을 가진 자들의 입장을 옹호해 왔습니다. 그릇됐습니다. 참말 그릇됐습니다.


그렇다고 흉내 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옳지도 않습니다. 선거 때나 연말연시에만 불우이웃성금을 내고 양로원, 고아원을 찾아 사진 찍는 것 따위는 원치도 옳지도 않습니다. 친환경이 어쩌고 떠드시며 주말이면 아름다운 우리 산을 깎아 만든 골프장에서 열심히 운동하시는 그런 모습도 사양합니다.


오늘날의 국민들은 똑똑합니다. 정치하시는 분들의 할리우드 액션 정도는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권력만 무서워 마시고 국민이 무서운 줄도 아세요.


이제 저는 감히 많은 것을 바랍니다. 소수의 이익과 돈과 권력을 지니지 못한 약자들의 입장을 옹호해 주세요. 아니, 대변해주세요. 그것이 정치하시는 분들의 몫입니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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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5년 11월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