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11/11 죽음도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1)
  2. 2007/07/12 “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죽음도 삶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r e v i e w 2008/11/11 23:54 posted by 곱씹다

다키타 요지로의 <굿’바이>는 ‘일본영화다운 일본영화’다. 혹 일본영화가 “나다운 게 뭔데?!”라는 클리셰로 묻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죽음’에 대한 반추와 ‘장인(匠人)’에 대한 경배, 그리고 ‘일상’에 대한 묘사. 적어도 드라마 장르에선 일본영화가 가장 잘 다루는 것들이다. 물론 이는 일본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확연히 갈리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기인한 특유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요컨대, 이 영화엔 이런 매력들이 온전히 들어있다. 장인을 소재로 설정하면서도 교묘하게 죽음을 주제로 내세우고 일상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독보적인 장점들을 집대성한 영화인 셈.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는 2009년 미국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부문의 일본 출품작이다.


도쿄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는 오케스트라의 갑작스런 해체로 실업자 신세가 되자,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와 함께 고향 야마가타로 돌아간다. 어머니가 물려준 집에 정착해 새로운 일을 찾던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고수익 보장’, ‘초보 환영’이라는 구인광고. 그런데 이게 웬걸. 여행사인 줄로만 알고 간 그곳은 ‘영원한’ 여행의 안내자를 모집하는 납관회사다. 기겁하는 그에게 사장 이쿠에이(야마자키 쓰토무)가 고액의 월급을 제안하고 그는 하릴없이 일을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초기 호된 일에 갈등도 하는 그지만, 베테랑 납관사 이쿠에이가 망자를 대하는 모습에 감화되면서 시나브로 납관사라는 직업에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에겐 생소한 납관사는 일본에서 장의사가 장례를 치르기 전에 염습과 납관만을 전담하는 틈새 직업. <굿’바이>가 죽음과 장인, 그리고 일상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이유도 이 독특한 소재 덕분이다. 납관사의 일상을 세세히 관찰해 죽음에 관한 주제를 이끌어 내는 식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건 납관사라는 직업 그 자체인데, 이때 드러나는 게 바로 장인 정신이다. 실제로 이쿠에이와 변화한 다이고가 망자를 대하는 경건한 태도나 그들에 의해 한결 평온해져 떠나는 망자들의 모습에선 비장미를 넘어 숭고미마저 느껴진다.


나아가서 <굿’바이>는 ‘직업에 대한 귀천(貴賤)’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배치해 극적 긴장감과 더불어 장인 정신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이를테면, 처음엔 상주와 친구의 멸시는 물론이거니와 이해심 많은 미카마저 납관사가 된 남편의 손이 “불결하다”며 뿌리치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멸시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건 죽음에 대한 불편함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말, 즉 살아있는 자신에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불확실한 존재라고 여기고 막연한 두려움을 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이고가 납관사로서 마주하는 숱한 죽음을 통해 “죽음만큼 일반적인 게 어디 있냐”며 “언젠간 너도 죽고 나도 죽는다”고 주지시킨다. 실제로 납관사에 대한 사람들의 멸시도 죽음의 오롯한 실존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이르러 되레 감사와 존경으로 전복되고 만다.


그런가 하면 <굿’바이>에서 나오는 다이고의 고향 혹은 소도시로의 회귀와 재래식 대중목욕탕의 존폐 위기는, 전자가 최근 일본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라면 후자는 과거 장인을 다룬 일본영화에서 익히 봐온 관습이다. 모두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 에 잇닿는 대목으로 이 영화의 주제와도 정서적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이처럼 얽히고설킨 일본영화의 특징들은 소소한 일상의 결을 벗겨내는 화법에 의해 잘 맞물린다. 물론 이 영화가 시종일관 묵직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 영화 초반 엉뚱한 상황에서 나오는 유머가 자칫 너무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외려 아쉬운 건 전형적인 3막 구조에서 아버지와의 매개물이나 균일하게 할당된 조연들의 사연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 <굿’바이>가 건네는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던진 말과 맥을 같이한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럼 삶의 일부인 죽음 또한 응당 맞이할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와 폭주족 등의 죽음에서 살아생전엔 미처 이루지 못한 가족 간의 화해를 보여줌으로써 삶의 무게를 강조한다. 납관사가 돼 처음으로 죽음을 실감한 다이고가 미카를 뜨겁게 안는 모습처럼, 우리네 삶도 뜨겁게 안으라는 조언이다.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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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mented by BlogIcon 남다른 몽상가 at 2008/11/22 00:50

    다섯 번째 문단, 끝내지 못한 숙제.

“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s k e t c h 2007/07/12 02:15 posted by 곱씹다

‘포장마차’ 속 별별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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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각역 뒷골목에 위치한 한 포장마차. ⓒ 이덕원


네온사인 휘황한 현대식 건물 사이 문화재도 아니면서 수십 년 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포장마차일 것이다. 옛 연인의 아련한 얼굴, 쇠약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 직장 상사의 쓴소리.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고단하고 척박한 삶을 소주 한잔에 털어 버린다.

종각역 뒷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도 옛 정취를 오롯이 간직한 채 사람들의 시름을 달래주고 있었다.
이른 저녁, 포장마차를 즐겨 찾는다는 한 중년 남성은 퇴근길 후덕한 주인아주머니의 인심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었다. "옛날부터 이상하게 포장마차 주황색 천막만 보면 그냥 치나 칠 수가 없더라"는 그는 "가슴이 답답할 때 간단히 혼자 마시기에 포장마차만 한 곳이 없다"며 포장마차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이어 그는 "예전 포장마차는 가격이 저렴해 서민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개시를 하고 나자 한 남성이 만취 상태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을 맞는 주인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다 싶더니 "일찍도 출근했네, 끝날 때 가려고 또 왔어?"라는 말이 이어진다. 뭔가 심상치 않던 그는 "내 돈 내놔. 내 핸드폰 내놔"라며 주인 어머니에게 윽박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주인 어머니에게 욕을 하며 행패를 부렸고 이내 실랑이 끝에 삼백 원을 내고 제 손으로 소주 한 병을 꺼내서는 어묵 국물 서비스까지 받으며 술을 마셨다. 그는 매일같이 찾아와 술주정을 부리고 영업시간이 끝날 때가 돼서야 가는 단골 아닌 단골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두고 간 휴대전화를 돌려 줬는데 그때부터 휴대전화를 내놓으라며 이렇게 악다구니 같은 술주정을 부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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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별 사람에 속도 많이 썩는다'는 주인아주머니 ⓒ 이덕원


많은 취객을 상대하는 일인 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다는 질문에 주인아주머니는 "별별 사람이 많아서 속도 많이 썩는다"며 가지각색 손님들 이야기를 꺼내 놨다. 혼자 와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는 가서 오지 않는 손님부터 무전취식을 하는 유형도 가지가지라고 한다. 한 번은 한 젊은이가 쇼핑백을 떡 하니 놓고 전화 좀하고 오겠다고 나가 도망을 쳐서 쇼핑백을 열어 보았더니 웬 아주머니의 헌 옷만이 덩그러니 들어 있다는 이야기. 젊었을 적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가 부도가 나자 부인과 자식에게 버림받고 매일같이 공짜 술을 얻으러 온다는 아저씨 이야기. 책 한 권으로도 못 엮어낼 만큼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주인아주머니의 포장마차 옆쪽에 붙어 있는 또 다른 포장마차. 이곳은 주인아주머니의 조카인 정병용(40)씨가 운영하고 있다. 정씨는 다니던 직장이 불안해 3년 전부터 포장마차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영업이 끝나는 새벽 4시부터 한 시간에 걸쳐 철거를 하고 오전 6시에나 집에 귀가해 7시가 넘어서야 잠에 든다고 한다. 이렇게 남들과 반대로 생활하는 그는 오후 2시에 일어나 오징어와 대합 등을 손질하고 장사 재료도 주문하면서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그는 그나마 영업 준비도 "옛날과 달리 요즈음은 따로 음식재료를 전문으로 대주는 곳이 있고 멀리서 택배로도 물건을 주문"해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정씨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예의 나오는 불량배들의 횡포에 대해 "신시가지에서는 불량배들이 좋은 자리를 잡아놓고 그 몫을 내주는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며 종로처럼 포장마차가 오래 있는 곳에서는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청이나 구청의 무허가영업 단속도 "종로에 있는 노점상이 천여 명에 달하는 실정이고 그 부양가족까지 고려하자면 생계적으로 절박한 문제"라며 그런 만큼 "단속에 노점상들이 연대해 대응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해진 편"이라고 전했다.


또 정씨는 포장마차 운영을 하며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물과 전기가 기본적으로 공급되지 않는 것"이라며 "물은 통에 길어 써야 하고, 전기는 멀리서 끌어다 쓴다. 게다가 포장마차를 이동하는 리어카 보관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곤 한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막무가내로 반말하는 손님부터 윽박지르는 손님까지 이제 욕에도 익숙해졌다"는 정씨는 반면 "명절 때마다 상품권이니 뭐니 챙겨 주는 단골손님도 있어 그 따듯한 마음에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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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장마차에는 '사람 냄새'라는 맛있는 안주가 있다. ⓒ 이덕원


‘퓨전포차’니 ‘오뎅바’니 하는 현대식 술집들이 거리에 즐비함에도 세상에 꺾일 때면 옛 향수 가득한 포장마차로 발길이 이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주황색 천막을 둘러치고 앉아 소주 한 잔 입안에 털어 넣으면 더 이상 시름은 시름이 아니고 아픔은 아픔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다. 이는 '사람 냄새'라는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마신 술에 취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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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6년 2월13일 작성.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