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03/19 비루한 현실을 달콤하게 채색한 '발리우드'풍 동화
  2. 2007/11/22 ‘로맨티시스트’와 ‘충신’ 사이에 선 김처선

비루한 현실을 달콤하게 채색한 '발리우드'풍 동화

r e v i e w 2009/03/19 14:58 posted by 곱씹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인도의 TV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서, 최종 라운드까지 오른 소년 자말 말릭(데브 파텔)이 부정행위를 의심받고 경찰에 넘겨진다. 이유는 교수, 변호사 같은 지식인들도 쩔쩔매는 수준의 문제들을 뭄바이 빈민가에서 태어나 정규교육도 받지 못한 전화상담원 보조가 맞혔다는 것.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녹록지 않았던 삶의 굽이굽이가 곧 문제를 푸는 열쇠였음을 밝힌다. 또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남다른' 목적이 스무고개처럼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총 8개 부문을 휩쓴 화제작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는 의외로 작품성에서는 그다지 빼어난 영화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아카데미가 주목했던 어느 정도 진지한 영화들과 달리 그저 유쾌한 오락 영화에 가깝다는 말이다. 게다가 스케일 면에서도 소박한 축에 속하는 영화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작품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여느 때보다 대중성과 이국적 정취에서 큰 점수를 딴 덕분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두 결정적 요인은 하나의 키워드로 만나기도 하는데, '발리우드'(인도의 영화 산업)가 바로 그것이다. 영국 출신의 대니 보일 감독은 인도를 배경으로 한 비카스 스와루프의 <Q&A>를 영화화하면서 공교롭게도 발리우드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따랐다. 작가 사이먼 뷰포이가 원작 소설을 각색해 발리우드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애절한 멜로라인과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등을 한결 부각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일견 성장영화 같은 이 영화를 정작 관통하는 건 자말와 라타카(프리다 핀토)의 멜로다. 그리고 이들의 멜로라인을 도드라지게 하는 영화적 장치, 즉 사랑의 훼방꾼들도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스타 배우 한 명 없이 인도 배우들을 위주로 이뤄진 캐스팅이나 발리우드 특유의 뮤지컬 같은 마지막 시퀀스, 인도의 전통 악기에 테크노를 접목한 음악 등은 이국적 정취에 한껏 매료되게 한다.(그나마 낯익은 얼굴이 영국 e4에서 2007년부터 방영됐던 드라마 <스킨스>(Skins) 시즌 1·2의 무슬림 앤워 카랄 역을 맡아 이름을 알린 데브 파텔이다) 자말의 삶에서 엿볼 수 있는 인도의 빈곤과 종교적 갈등,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로 서정적으로 그려지며 한껏 페이소스를 자아낸다. 그런데 이 영화의 한계도 여기서 기인한다. 결핍된 단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다소 관조적이기 때문이다. 영락없이 이방인의 거리가 느껴져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안전하게 잘 만든 오락 영화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 솜씨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돋보이는 게 탄탄한 플롯인데, 영화 후반까지 경찰의 추궁을 받는 자말의 현재 시점과 그의 해명에 따른 플래시백이 교차해 퀴즈쇼를 풀어가는 것처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고조한다. 특히 이야기가 하나의 시점으로 포개어지기 전후에 얼핏 '영심이'가 겹쳐 보이는 퀴즈쇼의 후반 라운드는 압권이다. 소신을 따르는 바람에 극적으로 행운을 잡는 데브 파텔의 모습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감칠맛 나게 응축할뿐더러 휴먼 드라마로써의 감동을 남김없이 이끌어 내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새롭지 않은 메시지가 퀴즈쇼라는 소재를 잘 활용하는 덕택에 색다르게 전해지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대중성은 거의 완전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한번쯤 기대고 싶은 동화기 때문이다. 다만 이 영화가 들춘 인도의 환부만은 결코 "영화 속 이야기니까"라고 덮어버릴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여기에 사실주의적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애당초 이 영화의 몫이 아니었으니 가타부타할 문제는 아닐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루한 현실이 달콤한 동화를 채색하는 도구로만 쓰였을 때, 아무래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로맨티시스트’와 ‘충신’ 사이에 선 김처선

r e v i e w 2007/11/22 14:37 posted by 곱씹다

SBS 대하사극 <왕과 나>엔 웬만한 드라마의 요소가 다 들어 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권력을 둘러싼 공방, 인간적인 의리와 갈등, 게다가 출생의 비밀까지. <왕과 나>가 휴먼드라마와 멜로드라마, 정치드라마를 모두 표방하고 있는 이유다.

여러 요소는 ‘내시’라는 특수한 집단을 통해 극대화되는데, 그 중심엔 김처선(오만석 분)이라는 기구한 운명의 내시가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고자 스스로 거세를 한 ‘로맨티시스트’이자, 권력 싸움으로 부모를 잃은 ‘피해자’이며, 임금에게 의리를 지키는 ‘충신’으로 그려진다.

반면, 김처선과 함께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내시부의 수장 조치겸(전광렬 분)은 김처선의 사랑을 이용해 내시로 만든 장본인이자, 부모를 잃게 한 ‘가해자’이며, 권력을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치 내시’. 이처럼 김처선과 조치겸은 운명적으로 물과 기름 같은 존재지만 부자의 연을 맺은 사이기도 하다.

이 중 지금까지 <왕과 나>의 인기 비결은 단연 김처선의 애절한 ‘사랑’과 조치겸의 ‘권력’ 공방에 있다. 실제 두 이야기는 마치 이륜차의 바퀴처럼 서로 균형을 유지하며 때론 정치드라마로, 때론 멜로드라마로 재미를 줬다.

50부작으로 기획된 <왕과 나>. 그런데 중반으로 접어들며 이런 ‘쌍끌이’가 위태로워 보인다. 한쪽을 받치던 주인공 김처선의 멜로 라인이 약해진 탓이다. 이는 줄곧 지켜온 월·화극의 왕좌를 MBC 특별기획드라마 <이산>에 내주고 만 이유와도 무관치 않은 듯싶다.

김처선은 윤소화를 ‘짝사랑’하나
   
본디 <왕과 나>의 뼈대를 이룬 멜로 라인은 김처선과 윤소화(구혜선 분), 성종(고주원 분)의 삼각관계. 그러나 윤소화와 성종의 합궁을 정점으로 김처선과 윤소화의 사랑은 이내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김처선과 윤소화 어린시절. ⓒ SBS

책임은 먼저 윤소화에게 돌아간다. 자신을 챙겨주는 김처선에게 ‘알듯 모를 듯’ 이성의 감정을 느낀 그녀. 궐에 들어오기 전, 윤소화는 김처선을 일컬어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의 감정은 궐에 들어온 뒤 사경을 헤매며 꾸는 꿈에서까지만 해도 절절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임금님을 만나 뵙게 되었는데 어찌 이리 마음이 답답하고 겁이 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옆에 있다면 크게 의지가 되었을 것을.” 후궁으로 간택 받은 윤소화는 그토록 연모했던 성종이건만 뜻밖에도 처음엔 합궁을 거부했다. 으레 김처선에 대한 마음 때문이리라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성종의 의심을 사면서 한층 공고해졌던 예상은, ‘임금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윤소화의 똑 부러진 해명으로 금세 무색해지고 말았다.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윤소화의 마음은 내관이 된 김처선과 재회한 자리에서도 도드라졌다. 상상해보자. 사랑하는, 아니 조금은 호감을 느끼는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내시’가 돼 나타났다면. 아무리 그들이 “플라토닉러브”라 하더라도 그녀처럼 무덤덤할 순 없으리라. 그녀는 그저 “네가 곁에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물론 이후 윤소화는 죽을 고비를 맞은 김처선을 찾아 눈물로 회생을 바라며 애틋한 감정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회. 그동안은 그런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위기에 처한 김처선을 ‘마땅히’ 왕에게 구명할 뿐. 안 그래도 모호했던 그녀의 감정이 더욱 분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전반적으로 김처선에 대한 윤소화의 마음은 기획 당시보다 ‘절제’된 듯하다. <왕과 나> 홈페이지에 실린 ‘등장인물’ 소개가 드라마의 내용과 미미하게나마 차이를 보이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합궁을 거부한 이유를 김처선에 대한 ‘알 수 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나와 있는 것이다.  

시청자가 느끼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설명이다. 이 역시 '왕의 여자'라는 그녀의 본분과 '충신'이라는 김처선의 본분을 고려하면 그녀의 사랑까지 뚜렷이 표현하는 데 제약이 뒤따랐기 때문일 터.

‘충신 김처선’과 ‘로맨티시스트 김처선’ 사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 SBS 대하사극 <왕과 나>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 중 윤소화(구혜선 분). ⓒ SBS

그러니 적어도 윤소화가 후궁이 된 뒤론 멜로 라인은 온전히 김처선의 몫이 됐다. 짝사랑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 그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셈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김처선의 사랑 역시 엿보기가 쉽지 않았다. 극은 그가 정식 내관이 되면서부터 또 다른 모습인 ‘충신 김처선’을 위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에는 성종의 진의를 이해하고 분열에 빠진 내시부를 구하고자 앞장서는 충신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김처선은 의도한 대로 먼발치서 윤소화를 바라보며 지켜주고 있다. 다만, 이때 간혹 이런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의 정체성이 혼동되는 때도 있다.  

‘늘 그랬듯’ 김처선은 위기에 처한 윤소화를 구하고자 양아버지인 조치겸에게 도움을 청하곤 한다. 내관이 되기 전과 달리 “내시의 본분”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로맨티시스트 김처선’다운 행동과 ‘충신 김처선’다운 말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중전 책봉이 그랬다. 조치겸은 성종이 친정을 펼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가문의 윤씨를 추천했지만, 김처선은 임금의 뜻을 받드는 게 “내시의 본분”이라며 윤소화를 책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충신 김처선’의 철학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윤소화를 위한 ‘로맨티시스트 김처선’의 마음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앞으로는 ‘로맨티시스트 김처선’과 ‘충신 김처선’ 사이의 충돌이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결국 그는 성종으로부터 사약을 받는 윤소화(폐비윤씨)를 지켜봐야만 하는 운명. 아마도 윤소화가 폐비를 당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녀의 아들로 자신이 충성으로 모신 연산군에게 죽임을 당할 때까지, 사랑과 충성 사이 갈등하는 김처선의 모습이 세밀하게 그릴 것으로 보인다. 

플라토닉러브는 역시 어려운 것인가. 비극적 사랑의 종착역을 앞뒀기에 김처선과 윤소화의 멜로 라인은 어쩐지 더 아쉽다. 그래도 '어릴 적 동무'와는 구분돼야 하지 않을까.
 
이덕원

-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기]